팔왕의 난
팔왕의 난(八王-亂)은 291년부터 306년까지 이어진 중국 서진의 내란으로, 서진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황실 내부의 권력 투쟁으로 발생하였으며, 팔왕의 난이라는 이름은 내란을 주동한 주요 황족 제후왕이 8명인 데서 유래하였다. 팔왕의 난이 초래한 계속된 혼란으로 인해 서진의 통치 기반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영가의 난으로 수도인 낙양이 이민족에게 함락되면서 서진이 멸망하였다. 이후 살아남은 황족 사마예가 강남에서 피신하여 나라를 다시 일으켰지만 과거 서진의 영토를 수복하지는 못하였으며, 화북지방에는 흉노 같은 이민족들이
시작~종료 291년 ~ 306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5
문서 정보
- 시작 ~ 종료
- 291년 ~ 306년
팔왕의 난(八王-亂)은 291년부터 306년까지 이어진 중국 서진의 내란으로, 서진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황실 내부의 권력 투쟁으로 발생하였으며, 팔왕의 난이라는 이름은 내란을 주동한 주요 황족 제후왕이 8명인 데서 유래하였다. 팔왕의 난이 초래한 계속된 혼란으로 인해 서진의 통치 기반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영가의 난으로 수도인 낙양이 이민족에게 함락되면서 서진이 멸망하였다.
이후 살아남은 황족 사마예가 강남에서 피신하여 나라를 다시 일으켰지만 과거 서진의 영토를 수복하지는 못하였으며, 화북지방에는 흉노 같은 이민족들이 세운 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였고 수나라에 의해 통일될 때까지 약 250년 이상 전란의 시대를 겪게 된다.
팔왕 명단
팔왕의 난에 연루된 8명의 왕은 다음과 같다. 서진 무제 사마염과 가장 가까운 관계 순으로 기술하였다.
- 여남왕(汝南王) 사마량(司馬亮) - 무제 사마염의 숙부, 선제 사마의의 5남
- 초왕(楚王) 사마위(司馬瑋) - 무제 사마염의 5남.
-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 - 무제의 숙부, 사마의의 9남
- 제왕(齊王) 사마경(司馬冏) - 무제의 조카, 무제의 동생인 제헌왕 사마유(司馬攸)의 아들
- 장사왕(長沙王) 사마애(司馬乂) - 무제 사마염의 16남.
- 성도왕(成都王) 사마영(司馬穎) - 무제 사마염의 6남.
- 하간왕(河間王) 사마옹(司馬顒) - 무제 사마염의 6촌, 사마의의 동생인 안평헌왕 사마부(司馬孚)의 손자
- 동해왕(東海王) 사마월(司馬越) - 무제 사마염의 6촌, 사마의의 동생인 사마규의 손자, 고밀문헌왕 사마태의 차남
배경
서진 1대 황제 무제(武帝)는 건국 후 황족의 권위와 국가의 힘을 과시하고 지방통치 강화를 위해 아들, 조카 등 황족을 왕(王)으로 임명하여 군대와 조세권 등을 주고 해당 지방을 통치토록 했다.(왕 지위의 세습도 허용). 그러나 무제 사후 황권이 약화되면서 각 지방의 제후왕들은 그들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중앙정부에 간섭하는 도전 세력이 되어 정치 혼란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2대 황제 서진 혜제(惠帝, 사마충)는 암우(暗愚)한 제왕으로 무제 사후 즉위하자마자 계모인 황태후 양씨(무제의 황후)가 정치에 관여하게 되면서 그녀의 친정인 양준(楊駿) 일가에게 대부분의 권력이 주어졌다. 이에 정치적 야심이 있는 황후 (賈氏, 가남풍)는 실권을 잡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팔왕의 난」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r38859851)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여자 목록은 원문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5 · r45625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