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위
사마위는 서진의 황족이자 팔왕의 난의 팔왕 중 한 명이다. 자는 언도(彦度)이다. 초대 황제 무제의 제6자이다. 생모는 심미인이다. 이복형은 혜제이다. 이복동생은 회제이다. 장사왕 [[사마예]]는 동모동생이며, 성도왕 [[사마영]]은 이복동생에 해당한다.
출생~사망 271년 ~ 291년마지막 수정 2026. 10. 16. 오후 4:17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271년 ~ 291년
사마위(司馬瑋, 태시 7년(271년) - 원강 원년 6월 13일1(291년 7월 26일))는 서진의 황족이자 팔왕의 난의 팔왕 중 한 명이다. 자는 언도(彦度)이다. 초대 황제 무제의 제6자이다. 생모는 심미인이다. 이복형은 혜제이다. 이복동생은 회제이다. 장사왕 사마예는 동모동생이며, 성도왕 사마영은 이복동생에 해당한다.
생애
가남풍과 결탁
어릴 때부터 과감하고 영민했다고 한다.
함녕 3년(277년) 8월, 시평왕에 봉해지고 둔기교위에 임명되었다.
태강 10년(289년) 11월, 사마위는 초왕으로 개봉되었고, 가절·도독 형주제군사·평남장군이 되어 봉국으로 부임했다. 이후 진남장군에 임명되었다.
원강 원년(291년) 1월, 황후 가남풍은 외척 양준의 전횡을 시기하여, 환관 동맹과 측근 맹관·이조와 함께 양준 주살의 계략을 꾸몄다. 또한 이조를 형주에 파견하여 사마위에게도 계획에 협력하도록 권했다. 사마위는 기뻐하며 찬성하고 입조를 요청했다. 양준은 평소 사마위의 용맹을 두려워하여, 그를 낙양으로 불러 가까이 두고자 했으나, 사마위가 반발하여 거병할까 두려워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사마위가 스스로 입조를 바랐으므로, 양준은 이를 흔쾌히 허락했다. 2월, 사마위는 낙양에 들어왔다.
3월, 가남풍 등이 거병하자, 사마위는 사마문을 제압하여 이를 엄호했다. 양준 일파가 조정에서 배척되자, 사마위는 공적으로 위장군·북군중후·시중·태자소부에 임명되어, 국정의 중추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마량·위관 주살
사마위는 혹형을 많이 제정했기 때문에 조신들이 그를 두려워했다. 또한 흉포하고 비뚤어져 있었으므로, 당시 권세를 쥐고 있던 대숙부인 여남왕 사마량과 태보 은 그에게 큰 임무를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사마위로부터 병권을 빼앗기 위해 임해후 를 사마위 대신 북군중후에 임명했다. 사마위가 이에 격분하자, 배개는 두려워하여 중후직을 사임했다. 사마량은 다시 위관과 모의하여 사마위를 비롯한 제왕들을 봉국으로 돌아가도록 명했으나, 이로 인해 사마위의 분노를 더욱 사게 되었고, 사마량 등과의 대립이 표면화되었다. 사마위의 측근인 장사 과 사인 은 가남풍과 결탁할 것을 진언했고, 사마위는 이를 따랐다. 가남풍은 이를 기뻐하며, 사마위에게 를 겸임시켜 낙양에 머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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