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황사
분황사(芬皇寺)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사찰이다. 선덕여왕(善德女王) 3년(634년)에 낙성된 이래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의 전성기와 함께했던, 1,400년 동안 법등(法燈)을 밝혀 온 유서 깊은 사찰이다. 송고승전(宋高僧傳)에는 왕분사(王芬寺)로 잘못적혀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으로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佛國寺)의 말사로써, 현재의 규모는 약사도량(藥師道場)으로써 약사불(藥師佛)을 모신 보광전(普光殿)과 석탑, 그리고 요사채의 단촐한 규모일 뿐이지만, 신라 불교를 대표하는 고승인 자장(慈藏, 590년 ~ 65
조성 634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5
분황사(芬皇寺)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사찰이다. 선덕여왕(善德女王) 3년(634년)에 낙성된 이래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의 전성기와 함께했던, 1,400년 동안 법등(法燈)을 밝혀 온 유서 깊은 사찰이다. 송고승전(宋高僧傳)에는 왕분사(王芬寺)로 잘못적혀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으로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佛國寺)의 말사로써, 현재의 규모는 약사도량(藥師道場)으로써 약사불(藥師佛)을 모신 보광전(普光殿)과 석탑, 그리고 요사채의 단촐한 규모일 뿐이지만, 신라 불교를 대표하는 고승인 자장(慈藏, 590년 ~ 658년)과 원효(元曉, 617년 ~ 686년) 등이 주석한 곳으로써 창건 당시의 사찰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옆에는 황룡사지가 있다.
전설
통일신라 경덕왕 때, 전설이다. 어떤 여인이 눈이 먼 아이를 위해 분황사 천수관음에게 다음과 같이 기도를 하였다. "관세음보살님, 천개의 눈을 가지셨으니 저의 아이를 위해 1개의 눈이라도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열심히 기도를 하자 아이의 눈이 다시 떠졌다는 전설이다.1
역사
《삼국사기》(三國史記) 선덕여왕 3년(634년)조에는 이 해,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고, 분황사가 완공되었다고 기록하였다. 분황(芬皇)이라는 사찰의 이름은 '향기로운 임금' 즉 선덕여왕 본인을 가리키며, 굳이 직역할 경우 '여왕(여제)의 사찰'(즉 '여제를 위한 사찰') 정도로 그 이름을 풀이할 수 있다.2 《삼국유사》에서도 비슷한 기록을 남기고 있어, 종래의 연구에서는 분황사를 발원한 단월(檀越)은 선덕여왕으로 이해해 왔다.
그런데 《삼국사기》는 선덕여왕 3년인 인평 원년(634년)에 완공(成)되었다고 하였고, 《삼국유사》는 이 해(갑오년)에 처음 지었다(始開)고 하여, 두 기록이 서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해당 시점인 634년을 전자가 사찰의 완공 시점으로 기록하였다면 후자는 사찰의 착공 시점으로 기록한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3 이에 대한 해석으로는 634년이 절의 완공 시기이며 분황사는 이미 그 전, 진평왕(眞平王) 말기에서 선덕여왕 즉위 사이의 기간부터 공사에 착수한 상태였을 것으로 해석되며, 선덕여왕이 분황사의 건립을 발원하고 착공하였다기보다는 선덕여왕 이전, 진평왕의 시대에 이미 분황사의 창건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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