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총
설총(薛聰, 655년?~?)은 신라의 학자이다. 자는 총지(聰智), 호는 빙월당(氷月堂)이다. 중국 한자를 신라어로 치환, 해석한 이두를 창시하였다.
출생 655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45
설총(薛聰, 655년?~?)은 신라의 학자이다. 자는 총지(聰智), 호는 빙월당(氷月堂)이다.1 중국 한자를 신라어로 치환, 해석한 이두를 창시하였다.
원효와 요석공주(태종무열왕의 딸) 사이에 태어났으며, 신라 3문장(三文章 : 強首-강수·薛聰·崔致遠-최치원) 중 한 사람이자 신라 10현의 한 사람으로 꼽히며, 벼슬은 한림(翰林)에 이르렀다. 문묘에 종사된 해동 18현 중의 한 사람이다.
생애
아버지는 승려 원효대사로 본명은 설사(薛思)였으며, 어머니는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딸 요석공주이다. 어려서부터 유달리 총명하여 널리 경사(經史)에 통했으며, 유학과 한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초기에 사문(沙門)에 들어가 불교 서적을 탐독했으나 뒤에 환속하여, 유교(儒敎)로 개종하였다. 신라 신문왕 때에 국학(國學)이 개설되고 다섯가지 경전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자, 그는 국학에 들어가 유학을 공부했다.
설총은 고대 한국어를 한문으로 표현한 첫 문자 체계 이두와 구결 문자를 규정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그때까지 존재하던 향찰을 집대성하였으며, 《육경》을 읽고 새기는 방법을 개발하여 한문을 국어화하고 유학 연구를 쉽게 그리고 빨리 발전시키는 데에 공이 컸다.1 강수와 함께 9경을 처음으로 구결(口訣)로 강론하여 후학을 지도하였다. 성덕왕 때 홍유후(弘儒侯)에 피봉되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라고도 불리는 〈계화왕〉(戒花王) 1편이 전한다. 이것은 한문으로 된 단편으로 꽃을 의인화(擬人化)하여 이야기를 전개한 것으로 당시 왕의 어질지 못함을 풍자한 글이다. 그는 에게 계화왕을 지어 올려, 신문왕에게 비행을 경계하고, 스스로 자성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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