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건적의 제1차 침입
1359년 음력 12월 모거경이 이끈 홍건적 4만 명이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의주·정주·인주·철주와 서경을 차례로 함락했으나, 고려군은 이듬해 1월 서경을 되찾고 2월 함종 등지에서 이들을 섬멸해 압록강 너머로 몰아냈다.
시작~종료 1359년 11월 ~ 1360년 2월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목차
상세 타임라인
개요
홍건적의 제1차 침입은 홍건적의 침입 가운데 첫 번째로, 1359년(공민왕 8)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서북면 일대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홍건적은 서경(평양)까지 점령했지만, 고려군의 반격으로 대부분 섬멸되고 압록강을 건너 살아 돌아간 자는 수백 명에 불과했다. 이 문서와 타임라인의 날짜는 모두 음력이다. 참고한 자료가 대부분 월 단위까지만 전하므로 양력 환산은 하지 않았다.
배경
요동을 차지했던 홍건적은 원군의 반격을 받아 근거지를 잃어 가고 있었다. 고려는 1357년 김득배를 서북면홍두군왜적방어도지휘사로 임명하고, 안주와 서경을 중심으로 청천강 이남에 방어선을 마련해 두었다. 이방실은 이때 부장으로 배치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방실」).
경과
침입과 북부 여러 주의 함락
1359년 11월 말 홍건적 3,000명이 먼저 압록강을 건너 북쪽 고을을 약탈하고 돌아갔다(한국어 위키백과). 이어 12월, 위평장(僞平章) 모거경이 4만 명을 이끌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의주를 함락하였다. 이때 부사 주영세와 주민 1,000여 명이 죽임을 당했다(「김득배」). 홍건적은 이어 정주(靜州)와 인주(麟州)를 함락했으며, 한국어 위키백과는 정주에서 도지휘사 김원봉이 전사했다고 적는다.
철주 전투
인주에 웅거한 홍건적이 남쪽 철주(지금의 평안북도 철산)로 내려오자, 안우·이방실·이음·이인우 등이 철주에서 이들을 격퇴하였다(「이방실」, 「안우」). 그러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홍건적」 항목은 철주도 결국 함락되었다고 서술하여, 자료 간에 차이가 있다(아래 이설 참조).
서경 함락
조정은 수문하시중 이암을 서북면도원수, 경천흥을 부원수, 김득배를 도지휘사로 임명해 막게 했다. 그러나 중앙군이 제때 모이지 않자 이암은 싸울 수 없다고 판단해 서경을 포기하였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호부낭중 김선치의 건의로 물자를 남겨 둔 채 황주로 물러났고, 홍건적은 싸우지 않고 서경에 들어가 물자를 차지하였다. 조정은 이암이 겁이 많아 지휘를 맡기기 어렵다 하여 이승경을 도원수로 교체하였다.
서경 탈환 (1360년 1월)
1360년 1월 이승경이 이끄는 고려군 2만 명이 서경을 공격해 되찾았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이 싸움에서 고려군 사상자가 1,000여 명, 홍건적 전사자가 수천 명이었으며, 패한 홍건적이 용강·함종 방면으로 달아났다고 적는다. 서경 승리 뒤 고려는 안우를 안주 도만호, 이방실을 상만호, 김어진을 부만호로 삼아 공격군을 재편하였다.
함종 전투와 추격 (1360년 2월)
2월 안우가 이끄는 고려군은 함종(지금의 평안남도 강서군 함종면)의 홍건적을 먼저 공격했다가 패했다. 그러나 곧 이방실이 적의 배후를 치는 등 다시 공세를 펴 함종 전투에서 크게 이겼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방실」 항목은 이를 제1차 홍건적 토벌전에서 가장 큰 전과로 평가하며, 한국어 위키백과는 이때 약 2만 명을 사살했다고 한다. 안우와 이방실은 1,000여 기의 기병으로 추격해 청천강 북쪽 연주 방면과 고선주(지금의 선천)에서 적을 다시 깨뜨렸고, 고려군은 정주·안주·철주 등지에서 남은 무리를 섬멸해 압록강 북쪽으로 몰아냈다.
결과
한국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4만 명 가운데 압록강을 건너 살아 돌아간 자는 300명에 불과했고, 고려 측 인명 피해도 민간인 1만여 명을 포함해 약 2만 명에 이르렀다. 이후 홍건적은 해로를 이용해 풍주·봉주·안악·황주·안주 등 서해 연안을 노략질했는데, 1360년 배 70척으로 서해도에 들어온 무리를 이방실이 기병으로 풍주에서 물리쳤다. 1차 침입을 막은 공으로 이방실 등이 공신에 책봉되었고, 김득배도 1360년 3월 공신에 봉해졌다. 그러나 홍건적은 1361년 더 큰 규모로 다시 쳐들어왔다(홍건적의 제2차 침입).
이설
- 철주의 함락 여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홍건적」은 철주와 서경이 차례로 함락되었다고 적지만, 같은 사전 「이방실」·「안우」 항목과 한국어 위키백과는 고려군이 철주에서 적을 격퇴했다고 서술한다. 철주 부근에서 격전이 있었고 적이 이를 우회해 서경으로 남하한 것으로 보이나, 이 문서에서는 두 서술을 함께 적었다.
- 「안우」 항목의 연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우」 항목은 1차 침입을 1357년으로 적는 부분이 있으나 다른 항목과 맞지 않아 1359년설을 따랐다.
- 함종과 정주·인주의 지도 위치는 옛 고을 터를 근사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참고 자료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 r187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