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패선
진 고조 무황제 진패선(陳 高祖 武皇帝 陳霸先, 503년 ~ 559년 8월 9일)은 중국 남북조 시대 진나라의 초대 황제이다. 후한의 태구장(太丘長) 진식(陳寔)의 후손이다. 군인 출신으로 후경의 난을 진압하고, 양 원제의 휘하에서 무공을 세웠다.
출생~사망 503년 ~ 559년 8월 9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09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503년 ~ 559년 8월 9일
- 재위
- 557년 11월 16일 ~ 559년 8월 9일
- 즉위식
- 영정(永定) 원년 10월 10일, (557년 11월 16일)
- 후임
- 문제(文帝)
- 재위
- 557년 11월 9일 ~ 557년 11월 16일
- 재위
- 557년 10월 13일 ~ 557년 11월 9일
- 재위
- 556년 10월 19일 ~ 557년 10월 13일
- 재위
- 552년 ~ 556년
- 재위
- 550년 ~ 552년
- 재위
- 550년 1월 ~ 550년 6월
- 휘
- 진패선(陳覇先)
- 묘호
- 고조(高祖)
- 시호
- 무황제(武皇帝)
- 능호
- 만안릉(萬安陵)
- 연호
- 영정(永定) 557년 ~ 559년
- 사망일
- 영정(永定) 3년 6월 21일, (559년 8월 9일) (55 - 56세)
- 부친
- 경황제(景皇帝) 진문찬(陳文讚)
- 모친
- 경문황후(景文皇后) 동씨(童氏)
- 배우자
- 무소황후(武昭皇后) 전씨(錢氏), 무선황후(武宣皇后) 장요아(章要兒)
진 고조 무황제 진패선(陳 高祖 武皇帝 陳霸先, 503년 ~ 559년 8월 9일(음력 6월 21일))은 중국 남북조 시대 진나라의 초대 황제이다. 후한의 태구장(太丘長) 진식(陳寔)의 후손이다. 군인 출신으로 후경의 난을 진압하고, 양 원제의 휘하에서 무공을 세웠다.
생애
진문찬(陳文讚)과 동씨(童氏)의 차남으로 503년 현재의 절강성 호주시 장흥현에 해당하는 곳에서 태어났다. 자는 흥국(興國)으로 아명은 법생(法生)이고 오흥군(吳興郡) 사람이다. 그의 선조 진달(陳達)은 영천 사람이었으나, 서진 말기 영가의 난 때 강남으로 이주하여 장성령이 되었으며 그의 조상들은 대대로 장성에 살며 산수를 즐겼다. 이에 동진 때 시행된 토단법에 따라 장성 사람이 되었다. 할아버지 진도거(陳道巨)는 관료를 지냈지만 아버지 진문찬의 기록은 거의 없다.
진패선의 키는 7척 5촌이었으며 어릴 때부터 원대한 꿈을 품었고 다른 사람들과 달리 모략에 뛰어났다. 영웅의 기백이 있었으며 장성해서는 역사책과 병서를 탐독하고 무예에 능하고 사리에 밝으며 과단성이 있어서 칭찬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진패선은 출신이 미천하여 시골 이장으로 있다가 수도 건강으로 가서 기름창고 책임자가 되었다. 하지만 대동 연간에 오흥태수 소영의 인정을 받아 소영이 광주자사가 되자 진패선은 중직병참군이 되어 참모가 되었다. 얼마 안 되어 서강독호, 고요 군수가 되고 542년에는 반란을 평정하여 양 무제의 칭찬을 받고 직각장군, 신안현자가 되었다. 소연은 화공을 시켜 진패선의 얼굴을 그리게 하여 그의 생김새를 보고 감탄했으며 교주사마, 시흥태수로 승진시켰다.
548년 8월, 후경이 심양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이듬해 12월, 진패선은 군내에 있는 호걸들과 널리 사귀며 함께 후경 토벌을 계획했다. 동시에 황실의 인정을 받기 위해 강릉에 사람을 보내 상동왕 소역(훗날 원제)의 지시를 받았다. 550년 정월, 소역은 진패선을 명위장군, 교주자사로 임명하고 552년 2월, 진패선은 군사 3만 명과 선박 2천 척을 이끌고 남강 분구에서 출발해서 백모만으로 가서 정동장군 왕승변과 만나 흙으로 제단을 쌓고 백마의 피를 입에 바르고 돌려 마시면서 같이 맹세의 글을 읽었는데 모두가 감개무량하여 눈물을 흘렸다.
결국 3월 건강을 깨뜨리고 후경의 난을 평정했으며 그 공으로 정로장군, 개부의동삼사가 되고 장성현후가 되어 경구를 지켰다. 554년 3월, 사공이 되었고 12월에는 왕승변과 함께 소역의 9남 진안왕 소방지를 태재로 세웠다.
하지만 이듬해 5월, 북제가 이전에 포로로 잡은 정양후 소연명을 내세워 황제로 세우도록 왕승변에게 압박하고 대군을 이끌고 침공하니 왕승변은 굴복하고 소연명을 황제로 세웠다. 진패선은 여러 번 사람을 보내 왕승변을 설득했으나, 왕승변이 들어 먹지 않자, 9월에 여러 장수들을 모아 왕승변을 주살할 계획을 세웠다. 원래 왕승변과 진패선은 잠재적인 동맹 관계로 서로 자식들을 정략결혼시키고 양나라 정권을 공동으로 이끌어 오고 있었으나, 결국 이 문제로 틀어지고 말았다. 전당 사람 두릉이 왕승변 토벌에 이의를 제기하자 진패선은 그가 왕승변에게 알릴 것을 우려하여 수건으로 그의 목을 졸라 기절시키고 별실에 감금했다. 결국 석두성을 습격하여 왕승변을 죽이고 10월에 소방지(경제)를 황제로 세웠다. 소연명은 건안공에 책봉했다가 곧 죽였으며 자기는 상서령이 되어 양나라 정권을 장악했다. 왕승변이 죽자 왕승변의 사위였던 오흥태수 두감과 의흥태수 위재는 왕승변의 아우 오군태수 왕승지와 함께 자기의 성을 지켰는데 이에 진패선은 그들을 모두 토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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