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라후
주라후(周羅睺, 542년 ~ 605년)는 중국 남조 진과 수의 장군으로, 자는 공포(公佈)이고, 구강군(九江郡) 심양현(潯陽縣) 사람이다. 주중은(周仲隱)의 아버지이다.
출생~사망 541년 ~ 604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3
주라후(周羅睺, 542년 ~ 605년1)는 중국 남조 진과 수의 장군으로, 자는 공포(公佈)이고, 구강군(九江郡) 심양현(潯陽縣) 사람이다. 주중은(周仲隱)의 아버지이다.
생애
남조 진나라에서의 생애
남조의 양(梁)에서 주법고(周法暠)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5세 때부터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했고 응구(鷹狗)2를 좋아했다.
진의 선제(宣帝) 때 전공을 세워 개원장군(開遠將軍)·구용현령(句容縣令)으로 임명되었으며, 후에 대도독(大都督) 오명철(吳明徹)의 아래에서 북제(北齊)군과 강양에서 싸웠는데, 왼쪽 눈에 유시를 맞았다.
북제군이 오명철을 숙예(宿預)에서 포위하자, 주라후는 말을 달려 돌진했고 태복경(太僕卿) 소마하(蕭摩訶)가 그를 보좌해, 진군은 북제군에 대승했다.
577년(태건 9년) 오명철이 북벌군을 서주(徐州)로 진군시켜 북주(北周)의 양사언(梁士彦)과 팽성(彭城)에서 싸웠는데, 이때 주라후는 적진 앞에서 낙마한 소마하를 구원해 그를 데리고 엄중한 포위를 돌파했다.
이듬해 오명철이 패하자 전군을 이끌고 귀환했으며, 같은 해 광원장군(光遠將軍)·종리태수(鍾離太守)를 거쳐 또 그 이듬해 사지절(使持節)・도독곽주제군사(都督霍州諸軍事)로 임명되었다.
산적 12동(洞)을 평정해 우군장군(右軍將軍)으로 임명되고 시안현백(始安縣伯)에 봉해졌으며, 이후 총관검교양주내외제군사(總管檢校揚州內外諸軍事), 진릉태수(晉陵太守), 태복경(太僕卿), 웅신장군(雄信將軍)을 거쳐 사지절·도독예장십군제군사(都督豫章十郡諸軍事)·예장내사(豫章內史)로 임명되었는데, 이때 사법의 절차를 관리에게 맡기지 않아 백성들이 그를 따르며 송덕비(頌德碑)를 세웠다.
지덕(至德) 연간3에 지절(持節)·도독남천제군사(都督南川諸軍事)로 임명되었는데, 강주사마(江州司馬) 오세흥(吳世興)이 주라후가 인심을 얻고 있는 것을 이유로 후주(後主)에게 그를 참소했고 소마하·노광달(魯廣達) 등이 주라후를 변호했다.
이 일을 알고 반란을 권하는 자가 있었으나, 주라후는 이를 거부하고 건강(建康)으로 귀환했으며, 태자좌위솔(太子左衛率)로 임명되고 후주에게 신임받게 되었다.
이후 도독상주제군사(都督湘州諸軍事)로 나갔다가 다시 소환되어 산기상시(散騎常侍)로 임명되었다.
588년(정명 2년) 수(隋)의 진왕(晉王) 양광(楊廣)이 진을 공격하자 주라후는 도독파협연강제군사(都督巴峽緣江諸軍事)가 되어 수의 진왕(秦王) 양준(楊俊)의 군을 저지하고 장강을 건너지 못하게 해 1개월 이상을 대치했으나, 이듬해 건강이 함락되고 후주가 항복해 포로가 되자 양광은 후주에게 편지를 쓰게 해서 주라후를 항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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