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연
후연(後燕, 384년 ~ 407년)은 오호십육국시대 선비족 모용수가 건국한 나라이다. 국호는 연(燕)이지만, 동시대에 같은 이름을 가진 나라가 4개(전연·서연·남연·북연)나 되기 때문에, 두 번째로 건국된 이 나라를 후연이라고 부르며 구별하였다. 후연은 고구려와 끊임없이 대립했으며, 훗날 고구려 왕족 출신의 고운이 황위를 찬탈하고 북연(407년 ~ 436년)을 세우면서 멸망하였다.
건국~멸망 384년 ~ 409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4
후연(後燕, 384년 ~ 407년)은 오호십육국시대 선비족 모용수가 건국한 나라이다. 국호는 연(燕)이지만, 동시대에 같은 이름을 가진 나라가 4개(전연·서연·남연·북연)나 되기 때문에, 두 번째로 건국된 이 나라를 후연이라고 부르며 구별하였다. 후연은 고구려와 끊임없이 대립했으며, 훗날 고구려 왕족 출신의 고운이 황위를 찬탈하고 북연(407년 ~ 436년)을 세우면서 멸망하였다.
역사
전연이 멸망한 뒤 전연의 왕족이었던 모용수는 전진의 부견 휘하에서 복무하였다. 383년, 부견이 비수대전에서 패배하자 모용수는 이를 기회로 독립하기로 마음먹고 부견을 설득하여 곁을 떠나 하북의 업으로 들어갔다. 이때 정령족의 적빈(翟斌)이 낙양 근방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모용수는 토벌을 위해 출진하였다. 업성을 나선 모용수는 감시를 위해 수행한 부비룡(苻飛龍)을 살해하고 군대를 모았으며 적빈의 군대도 흡수하였다.
384년 정월에 모용수는 연왕에 즉위하여 후연을 건국하였다. 모용수는 전진의 부비가 지키는 업을 놓고 1년 동안 공방전을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기주 대부분을 점령하였다. 385년에 부비가 업을 버리자, 업을 점령하여 하북을 평정하였다. 6월에 고구려의 고국양왕은 군사 4만 명을 내어 후연의 을 습격하였다. 이에 앞서, 는 모용좌(慕容佐)에게 명하여 용성(龍城)에 진주하게 하였다. 모용좌는 고구려의 군대가 요동을 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학경(郝景)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게 하였으나, 고구려의 가 그들을 쳐서 이기고, 마침내 과 를 함락시켜 남녀 1만 명을 사로잡아 돌아갔다. 겨울 11월에 후연의 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에 쳐들어 가서, 요동·현도 2을 다시 차지하였다. 처음에 와 의 들이 많이 투항하여 왔으므로, 모용농이 사람 방연(龐淵)을 로 삼아 이들을 불러 위무하게 하였다.386년에 에 를 정하고 에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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