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사태
1997년 1월 23일 재계 14위 한보그룹의 주력사 한보철강이 당진제철소 건설에 쏟아부은 막대한 차입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도 처리된 사건과, 이어 드러난 정관계·금융권 특혜 대출 비리. 대기업 연쇄 부도의 신호탄이 되어 [[1997년 외환 위기]]로 이어지는 흐름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시작~종료 1997년 1월 23일 ~ 1997년 6월 2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12:04
상세 타임라인
개요
한보 사태는 1997년 1월 23일 한보그룹의 주력 계열사 한보철강이 최종 부도 처리되고, 이 과정에서 은행들이 정치권 등의 압력 속에 거액을 특혜 대출해 준 사실이 드러난 일련의 사건을 가리킨다. 한보그룹은 1997년 당시 재계 서열 14위였다. 부도 이후 검찰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가 이어졌고, 그룹 총회장 정태수, 여야 국회의원, 전직 장관, 시중은행장,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까지 사법 처리 대상에 올랐다. 한보의 붕괴는 같은 해 삼미·진로·기아 등 대기업들의 잇따른 부도와 금융권 부실로 이어져 1997년 외환 위기의 전조가 되었다.
배경
정태수는 1974년 3월 (주)한보상사를 세운 뒤 건설·주택 사업으로 그룹을 키웠다. 그는 1991년 2월 서울 수서지구 택지 특혜 공급 의혹(수서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그해 7월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1995년 11월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구속된 뒤 1996년 4월 병보석으로 나온 전력이 있었다.
한보그룹의 운명을 가른 것은 충청남도 당진의 일관제철소 사업이었다. 한보철강은 1989년 무렵 당진 부지 매립에 약 1조 2천억 원을 투자했고, 이후 코렉스(COREX) 공법을 도입한 제철소 건설에 나섰다. 총투자비는 약 5조 7천억 원에 이르렀는데, 이 돈의 대부분을 회사채와 은행 차입으로 조달했다. 경향신문 등은 한보가 부도에 이르기까지 받은 대출을 5조 7천억 원대 불법·특혜 대출로 표현한다. 제철소가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기 전에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1996년 9~12월 제일·산업·조흥·외환은행이 각각 1천억 원씩 4천억 원을 추가로 지원하고 1997년 1월 8일 다시 4개 은행이 1,200억 원을 넣었지만 자금난을 막지 못했다.
경과
부도
1997년 1월 23일 저녁 서울 제일은행 본점에서 채권금융기관 회의가 열렸다. 정태수 총회장이 한보철강 주식을 담보로 내놓았으나 경영권 포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채권단은 한보철강을 최종 부도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그룹 차원의 부도 날짜를 1월 30일로 적기도 하는 등 자료에 따라 날짜 표기가 엇갈린다.
수사와 '정태수 리스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수사에 나서면서 특혜 대출의 배경으로 정치권 로비 의혹이 불거졌다. 정태수에게서 돈을 받은 정치인 명단이라는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가 정국의 최대 쟁점이 되었고, 시중은행 전·현직 은행장 7명이 조사를 받아 3명이 구속되었다. 수사는 곧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에게로 번졌다. 김현철은 2월 하순 검찰에 출석해 한보 정보근 회장과 대질 조사를 받았다.
대통령 담화와 청문회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4주년인 1997년 2월 25일 대국민 담화를 생방송으로 발표해 한보 사태와 아들 문제에 대해 거듭 사과하고, 신분과 지위를 가리지 않고 관련자의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국회는 한보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를 꾸려 4월 7일부터 청문회를 열었다. 정태수는 4월 7~8일 의왕의 서울구치소에서 열린 이른바 '구치소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정치자금 제공 여부를 추궁받았는데, 오전에 일부 여야 중진 의원에게 자금을 건넨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듯한 답변을 했다가 오후에 이를 번복하는 등 핵심 의혹에 대해서는 대체로 답변을 피했다. 당시 언론은 증인들이 "모른다", "기억에 없다"는 말로 일관해 청문회가 진상 규명에 한계를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김현철 구속
검찰은 1997년 5월 17일 김현철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와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했다. 시민단체는 검찰이 국정 개입 의혹 전반이 아니라 일부 혐의만 적용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재판
1997년 6월 2일 서울지방법원 형사합의30부는 한보 사건 1심에서 다음과 같이 선고했다(서울신문 보도).
-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 징역 15년(검찰 구형 20년). 검찰은 그가 회사 돈 약 1,911억 원을 횡령하고 32억 5천만 원의 뇌물을 준 혐의 등을 적용했다.
- 정보근 한보그룹 회장: 징역 3년
- 홍인길 신한국당 의원: 징역 7년, 추징금 10억 원
- 권노갑 국민회의 의원: 징역 5년, 추징금 2억 5천만 원
- 김우석 전 내무부 장관: 징역 4년
- 황병태·정재철 신한국당 의원: 각 징역 3년
- 전직 은행장 3명: 징역 4~5년
김현철은 1997년 10월 13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고, 재판은 1999년까지 이어져 징역 2년과 벌금 10억 5천만 원, 추징금 5억 2,420만 원이 선고되었으며 같은 해 8월 사면되었다(한국어 위키백과). 정태수는 5년 5개월가량 복역한 뒤 2002년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이후
정태수는 2007년 강릉영동대학 교비 횡령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중 치료를 이유로 출국해 해외로 도피했다. 검찰은 그가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을 거쳐 2010년 에콰도르에 정착한 것으로 보았고, 2019년 7월 4일 그가 2018년 12월 1일 에콰도르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한보철강은 2004년 현대하이스코에 인수되었다가 현대제철에 합병되어 당진제철소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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