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 위기
1997년 말 외화 유동성이 고갈된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고,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거쳐 2001년 8월 차입금을 모두 갚기까지의 경제 위기이다.
시작~종료 1997년 11월 21일 ~ 2001년 8월 23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상세 타임라인
개요
1997년 11월, 단기 외화 자본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고 외환 보유액이 바닥나 한국은 대외 채무를 갚지 못할 위기에 몰렸다. 정부는 11월 21일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한다고 발표했고, 12월 3일 IMF와 정책 이행 각서(양해 각서)에 서명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한국은 IMF에서 195억 달러, 세계은행(IBRD)에서 70억 달러,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37억 달러를 지원받아 위기를 넘겼다. 이 시기를 흔히 'IMF 사태' 또는 'IMF 외환 위기'라고 부른다.
배경
1990년대 한국 경제는 물가 4~7%, 연평균 성장률 7% 안팎으로 겉보기에는 순조로웠지만,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고 1996년에는 적자 폭이 크게 커졌다. 금융 개방과 자본 자유화가 진행되면서 국내 금융기관은 해외에서 짧은 만기로 돈을 빌려 국내 기업에 길게 빌려주는 구조가 되었고, 대기업들은 빚에 의존해 몸집을 불렸다.
1997년 들어 한보철강 부도를 시작으로 삼미, 진로, 대농, 기아 등 대기업이 잇따라 쓰러지면서 한국 경제에 대한 대외 신뢰가 빠르게 떨어졌다. 7월 태국 바트화 폭락으로 시작된 아시아 금융 위기가 인도네시아·필리핀 등으로 번지자 해외 금융기관들은 한국에 빌려준 단기 자금의 만기 연장을 거부하고 상환을 요구했다. 정부는 환율을 지키려 외환 시장에 개입했지만 보유 외환만 줄어들었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가용 외환 보유액은 12월 18일 39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경과
구제 금융 신청과 합의
11월 16일 미셸 캉드쉬 IMF 총재가 비밀리에 서울에 와 정부 경제팀과 만났고, 새로 취임한 임창열 경제부총리는 11월 2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12월 3일 밤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임창열 부총리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가 캉드쉬 총재가 지켜보는 가운데 정책 이행 각서에 서명했다. IMF는 지원의 대가로 긴축 재정과 고금리, 금융·기업 구조 조정, 자유 변동 환율제, 자본 시장 전면 개방 등을 요구했다. 12월 18일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김대중 후보는 IMF와의 합의를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구조 조정과 금 모으기 운동
1998년 2월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IMF 요구를 받아들여 부실 금융기관과 기업을 정리했다. 1998년 6월 부실 기업 55곳의 퇴출이 발표되고 은행 5곳이 문을 닫았으며, 생명보험사 등도 영업 정지되었다. 대기업 사이에서는 이른바 '빅딜'로 불린 사업 교환이 추진되었다.
시민들은 금 모으기 운동으로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탰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997년 12월 새마을부녀회의 '애국 가락지 모으기'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1998년 1월 KBS 캠페인과 '외채상환 금모으기 범국민운동본부' 발대식(1월 12일)을 계기로 전국으로 번졌고, 약 351만 명이 참여해 금 약 227톤을 모았다. 모은 금은 대부분 수출되어 약 22억 달러어치가 되었다. 대구 등지에서는 이 운동을 1907년 국채 보상 운동에 빗대 '제2의 국채 보상 운동'으로 부르기도 했다.
상환
한국은 단기 고금리 차입금인 보완준비금융(SRF) 135억 달러를 1999년 9월에 조기 상환했고, 대기성 차관 60억 달러를 2001년 1월부터 갚기 시작해 2001년 8월 23일 마지막 1억 4천만 달러를 상환했다. 2004년 5월까지 갚기로 했던 IMF 차입금 195억 달러를 구제 금융 신청 3년 8개월 만에, 예정보다 3년 가까이 앞당겨 모두 갚은 것이다.
영향
위기 직후 기업 도산과 대규모 해고가 잇따라 실업률이 치솟았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실업률은 1999년 2월 8.9%로 정점에 이르렀다. 외환 위기를 거치며 평생 고용 관행이 무너지고 비정규직이 늘어나 노동 시장의 양극화가 깊어졌다는 평가가 많다. 금융 감독 체계 정비, 기업 지배 구조 개선, 외국 자본의 국내 금융기관·기업 인수 등 경제 체질도 크게 바뀌었다. 한편 준비 없는 금융 개방과 단기 자본 유출입 허용이 위기를 불렀다는 비판, IMF의 처방이 지나치게 가혹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참고 자료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 r443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