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징비록(懲毖錄)은 조선 선조 때 류성룡이 쓴 임진왜란에 대한 1592년(선조 25)에서 1598년(선조 31)까지 7년 동안의 일을 수기(手記)한 책으로, 저자가 벼슬에서 물러나 한거(閑居)할 때 저술하였고 1604년(선조 37년) 저술을 마쳤다. 1969년 11월 12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제작 1592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45
문서 정보
- 제작
- 1592년
- 종목
- 국보 제132호 , (1969년 11월 12일 지정)
- 수량
- 1책
- 시대
- 조선
- 관리
- 한국국학진흥원
- 좌표
- .mw-parser-output .geo-default,.mw-parser-output .geo-dms,.mw-parser-output .geo-dec{display:inline}.mw-parser-output .geo-nondefault,.mw-parser-output .geo-multi-punct{display:none}.mw-parser-output .longitude,.mw-parser-output .latitude{white-space:nowrap}북위 36° 42′ 08″ 동경 128° 48′ 39″ / 북위 36.70222° 동경 128.81083° / 36.70222; 128.81083
- 정보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 위치
- 36.7021, 128.8084
징비록(懲毖錄)은 조선 선조 때 류성룡이 쓴 임진왜란에 대한 1592년(선조 25)에서 1598년(선조 31)까지 7년 동안의 일을 수기(手記)한 책으로, 저자가 벼슬에서 물러나 한거(閑居)할 때 저술하였고 1604년(선조 37년) 저술을 마쳤다. 1969년 11월 12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저술의 동기
징비란 《시경(詩經)》의 소비편(小毖篇)의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전란사로서,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전황 등을 기록한 책이다.
『징비록』의 첫 장에서 류성룡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비옥한 강토를 피폐하게 만든 참혹했던 전화를 회고하면서, 다시는 같은 전란을 겪지 않도록 지난날 있었던 조정의 여러 실책들을 반성, 앞날을 대비하며 왜란을 겪은 후 후세에 길이 남길 쓰라린 반성의 기록으로 『징비록』을 저술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저술되었다는 점에서, 『징비록』은 우리나라에서 쓰인 여러 기록문학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진다고 하겠다.
이 책의 내용에는 임진왜란의 원인과 경과 그리고 자신의 잘못과 조정의 실책,백성들의 조정에 대한 비판 등을 담고 있다.
《징비록》은 이후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의 공과를 평가하는 데 사용되었다.
특히 류성룡은 스승인 퇴계 이황의 학설에 따라 이기론(理氣論)을 펼치고 양명학을 비판했으며 이황의 이선기후설(理先氣後說)을 좇아 기(氣)는 이(理)가 아니면 생(生)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여 기보다 앞서 있는 실체로서의 이를 규정했다.
류성룡은 양명학의 핵심적 이론인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과 치양지설(致良知說)이 ‘굽은 것을 바로 잡으려다 지나치게 곧아진(矯枉而過直)’ 폐단에 빠진 것으로 불교의 학설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하나에 치중됨이 없이 병진해야 한다는 지행병진설(知行竝進說)을 주장했다. 왜 만들어졌냐면 임진왜란이 잘못한 것을 밝히기 위해
그가 남긴 저작 중 『징비록』(懲毖錄)은 이러한 ‘알면 행하여야 한다’는 지행병진설이 잘 반영된 책으로 알려 있다. 참혹한 국난의 하나였던 임진왜란에서의 아픈 경험을 거울삼아 다시 그러한 수난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후세를 경계하기 위하여 남긴 저술이다. 임진왜란의 전모를 정확하고 생생하게 비춰주고 있어 임진왜란에 관한 많은 기록 가운데서도 귀중한 사료(史料)로 평가되고 있다.1
일화
《징비록》에는 임진왜란 직전, 그리고 발발 및 전개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 1586년, 쓰시마 도주(島主) 귤강광(橘康廣, 유즈야 야스히로柚谷康広)이 히데요시의 서신을 갖고 조선을 방문했을 때, 그의 행렬 좌우에 늘어선 조선군 병사들이 들고 선 창을 보고 「당신네들의 창은 참 짧군요 그래」하고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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