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편찬
고려 후기 승려 일연(1206~1289)이 만년에 고조선부터 후삼국까지의 역사와 불교 설화·향가 등을 모아 엮은 『삼국유사』의 편찬으로, 흔히 1281년 무렵 집필되었다고 하며 일연이 머문 군위 인각사와 깊이 연결된다.
시작~종료 1281년 ~ 1289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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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고려 후기 가지산문의 승려 일연(一然, 1206~1289)이 편찬한 역사서이다. 5권 2책(목판본)으로, 왕력·기이·흥법·탑상·의해·신주·감통·피은·효선의 9편, 140여 조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삼국사기』와 함께 한국 고대사 연구의 기본 사료이며, 단군 신화를 비롯해 『삼국사기』에 없는 수많은 기록과 지금은 사라진 옛 문헌의 인용, 신라 향가 14수를 담고 있다. 지도에는 일연이 만년을 보내고 입적한 군위 인각사(지금의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를 표시하였다.
편찬 배경
일연이 살았던 13세기는 몽골의 고려 침입으로 국토가 유린되고, 이어 원 간섭이 시작된 시기였다. 일연은 1236년 몽골군이 침입하자 비슬산 보당암에서 무주암으로 거처를 옮겼고, 1249년부터는 남해 정림사에서 대장경 판각 사업(분사대장도감)에 3년가량 참여하였다(팔만대장경 조판). 1281년(충렬왕 7)에는 경주에 행차한 충렬왕을 찾아갔다가 몽골군의 병화로 불타 버린 황룡사의 모습을 직접 보았다. 이처럼 전란과 외세의 압박 속에서 민족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되새기려는 의식이 편찬의 바탕이 되었다고 흔히 해석된다.
일연과 편찬 과정
- 청도 운문사 시기 (1277~1281): 일연은 충렬왕 3년(1277)부터 1281년까지 왕명으로 청도 운문사 주지로 있으면서 선풍을 크게 일으켰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연」 항목은 이때 『삼국유사』 집필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 경주 행재소 (1281): 일본 원정 준비차 경주에 머물던 충렬왕에게 나아갔다.
- 국존 책봉 (1283): 1282년 개경 광명사에 머물렀고, 1283년 국존(國尊)에 책봉되었다. 그 뒤 노모를 봉양하려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 군위 인각사 (1284~1289): 1284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조정은 군위 화산의 인각사를 수리하고 토지 100여 경을 주어 그곳에 머물게 했다. 일연은 여기서 구산문도회를 두 차례 열었고, 1289년 입적하였다. 인각사에는 그의 부도와 탑비(보각국사탑 및 비)가 남아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삼국유사」(간행 항목)는 일연이 젊어서부터 자료를 모았으며 실제 집필은 70대 후반부터 84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만년에 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간행과 전승
일연 생전에 책이 간행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의 제자 무극(無極)이 1310년대에 간행했는데, 책 속 두 곳에 '무극기(無極記)'라는 보충 기록을 남겼다. 이것이 초간본인지 재간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고려 시대 판본은 전하지 않고, 조선 초기 판본 일부와 1512년(중종 7) 경주부윤 이계복이 다시 새긴 이른바 중종임신본(정덕본)이 전한다. 정덕본은 약 290판 가운데 40판가량만 옛 판을 쓰고 나머지는 새로 새긴 것이다. 조선 초기 판본인 송은본은 1965년 보물, 2003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2022년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내용과 의의
- 구성: 권1의 왕력은 삼국·가락국·후고구려·후백제의 연표이고, 기이편은 고조선부터 후삼국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흥법편 이하는 불교 전래, 탑과 불상, 고승, 신이한 감응, 은둔자, 효행 등 불교 중심의 이야기다.
- 사료적 가치: 고조선과 단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을 담고 있으며, 『삼국사기』가 빠뜨린 자료와 현재 전하지 않는 옛 기록을 다수 인용한다. 향가 14수는 신라 문학과 고대 국어 연구의 핵심 자료이다.
- 성격 논쟁: 이 책을 불교사서로 볼지, 설화집이나 잡록으로 볼지는 학자마다 다르다. 신이한 내용이 많다는 비판도 있었으나, 이는 일연이 의도적으로 택한 역사 서술 방식이라는 해석이 있다.
이설
- 편찬 시기: '1281년 무렵' 편찬설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는 운문사 시절 집필을 시작했다는 추정과 연결된 것이다. 실제 완성은 인각사에 머문 1284~1289년 사이라는 견해가 많고, 인각사에서 저술했다는 서술(한국어 위키백과 「인각사」)도 있다. 반면 일연 사후 세워진 인각사 비문에는 저술 목록에 『삼국유사』가 보이지 않아, 편찬 경위와 무극의 역할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 지도 좌표는 인각사의 대략적 위치다.
참고 자료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 r190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