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태
주태(周泰, ? ~ ?)는 중국 후한 말 손권 휘하의 장군으로 자는 유평(幼平)이며 양주 구강군 하채현(下蔡縣) 사람이다. 한미한 출신으로서 자수성가했다. 손권이 산월의 습격으로 목숨이 위험했을 때 몸을 던져 구했다. 싸우다 생긴 수많은 흉터들에 손권이 눈물을 흘렸다.
출생~사망 연도 미상 ~ 228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21
주태(周泰, ? ~ ?)는 중국 후한 말 손권 휘하의 장군으로 자는 유평(幼平)이며 양주 구강군 하채현(下蔡縣) 사람이다. 한미한 출신으로서 자수성가했다. 손권이 산월의 습격으로 목숨이 위험했을 때 몸을 던져 구했다. 싸우다 생긴 수많은 흉터들에 손권이 눈물을 흘렸다.
생애
12개의 상처가 남았사옵니다
장흠과 함께 손책의 측근이 되어 많은 공을 세웠다. 196년(건안 원년)1 손책이 회계태수 왕랑을 무찌르고 회계군을 점유하면서 별부사마가 되어 병사를 받았다. 이는 회계를 치기 전에 별부사마가 된 장흠보다는 약간 늦은 것이다.2 손권은 주태가 마음에 들어서 형에게 주태를 붙여달라고 청했다. 198년1 조랑, 태사자3 등이 항거하고 있던 단양 6개 현을 손책이 정복할 동안4 손권은 선성(宣城)을 지키고 있었는데, 병사가 채 천 명이 안 되는데도 경계를 소홀히 하다가 산월 수천 명의 습격을 받았다. 손권은 비로소 말에 올라탔으나 이미 창칼이 오고 가고 안장을 찍기도 하였다. 모두가 당황하는 속에서 오로지 주태만이 용감무쌍하게 몸을 던져 손권을 지키니 좌우도 주태로 말미암아 함께 싸워 마침내 적을 물리쳤다. 주태는 열두 군데나 상처를 입었고 한참이 지나서야 되살아났다. 주태 덕분에 손권이 살았으므로 손책은 매우 고마워하며 단양군 춘곡현장(春穀―, 지금의 )으로 보임시켰다. 199년 손책을 따라 태수 의 본거지 환현(皖縣, 지금의 안후이성 )을 점령했고, 유훈을 도운 태수 까지 쳐부수었다. 돌아오는 길에 의춘현장(宜春―, 지금의 )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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