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타
화타(華佗, 145년 ~ 208년)는 중국 후한 말의 의사로, 화타(華佗/華陀)는 ‘선생’이라는 뜻의 존칭을 붙여 부르던 것이 이름으로 알려진 것이며, 이름을 부(旉)라고도 하며, 자는 원화(元化)이며 예주 패국 초현(譙縣) 사람이다. 동시대의 동봉(董奉)과 "상한론(傷寒論)"의 저자인 장기(자가 중경로 흔히 "장중경"으로 알려져 있음)과 더불어 건안삼신의(建安三神醫)라고 불린다. 워낙 유명한 명의다 보니 실제 역사와 관계없는 설화에서도 등장이 잦다. 판본에 따라선 《토끼전》에 나와 토끼를 놓친 자라에게 만병통치약을 주며 구원하는
출생~사망 연도 미상 ~ 208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21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연도 미상 ~ 208년
- 본명
- 부(旉)
- 출생
- 145년, 예주 패국 초현
- 사망
- 208년
- 성별
- 남성
- 국적
- 후한
- 직업
- 의사
- 위치
- 33.8626, 115.7742
화타(華佗, 145년 ~ 208년)는 중국 후한 말의 의사로, 화타(華佗/華陀)는 ‘선생’이라는 뜻의 존칭을 붙여 부르던 것이 이름으로 알려진 것이며, 이름을 부(旉)라고도 하며, 자는 원화(元化)이며 예주 패국 초현(譙縣)1 사람이다.2 동시대의 동봉(董奉)과 "상한론(傷寒論)"의 저자인 장기(자가 중경(仲景)로 흔히 "장중경"으로 알려져 있음)과 더불어 건안삼신의(建安三神醫)라고 불린다. 워낙 유명한 명의다 보니 실제 역사와 관계없는 설화에서도 등장이 잦다. 판본에 따라선 《토끼전》에 나와 토끼를 놓친 자라에게 만병통치약을 주며 구원하는 역할로 나오는 것이 그 일례다.
생애
패상(沛相) 진규(陳珪)가 효렴(孝廉)으로 천거했고, 또 태위(太尉) 황완(黃琬)이 벽소(辟召)3 했지만 모두 응하지 않고 재야에 머물렀다.2
화타는 본디 선비였으므로, 자신이 의사로 여겨지는 것을 부끄러워했다.2 후에 조조(曹操)가 중병에 걸리자 화타를 불러 치료하게 했다.2 화타는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고 하고서는, 관직에 오르는 것을 싫어하여 잠시 집에 돌아간다고 하고서는 아내의 병을 칭탈하여 여러 차례 미루며 조조에게 가지 않았다.2 조조는 화타가 계속 미루자 분노하였고, 화타의 아내가 정말 병에 들었는지를 살펴보고 참이거든 휴가를 더 주되 거짓으로 판명되거든 압송하라고 하였다. 결국 화타는 압송되었다.2 화타는 죄를 시인했고, 순욱(荀彧)이 조조에게 화타를 살려줄 것을 청했으나 조조는 화타를 “쥐새끼 같은 자”로 언급하며, 듣지 않고 화타를 고문하고 죽였다.2 나중에 아들 (曹沖)이 병들어 죽게 되자, 조조는 화타를 죽인 것을 후회하였다. 죽게 된 화타는 옥졸에게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말하며 책을 주려 하였으나, 옥졸이 불법행위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거절하니 화타도 강요하지 않고 불에 태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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