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손
육손(陸遜, 183년 ~ 245년 2월)은 중국 후한 말, 삼국시대 오나라의 정치가로, 자는 백언(伯言)이며 양주 오군 오현(吳縣) 사람이다. 형주 공방전에서 여몽을 도와 관우를 사로잡는데 공을 세웠고, 이릉(夷陵)에서 화계(火界)로 선주를 패퇴시켰으며, 석정(石亭)에서 대사마 조휴의 군대를 물리쳤다. 본명의 육의이나, 육손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출생~사망 183년 ~ 245년 3월 19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4
육손(陸遜, 183년 ~ 245년 2월1)은 중국 후한 말, 삼국시대 오나라의 정치가로, 자는 백언(伯言)이며 양주 오군 오현(吳縣) 사람이다. 형주 공방전에서 여몽을 도와 관우를 사로잡는데 공을 세웠고, 이릉(夷陵)에서 화계(火界)로 선주를 패퇴시켰으며, 석정(石亭)에서 대사마 조휴의 군대를 물리쳤다.
본명의 육의이나, 육손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생애
초반
원래 이름은 육의(陸議)인데, 그의 집안은 대대로 강동 지역을 다스려온 호족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종조부인 여강 태수 육강에게 양육되었다. 그러나 육강이 당시 크게 세력을 떨치고 있던 원술과 대적하게 되자 육강은 일족을 육손에게 맡기고 오나라로 피신시킨다.
오나라에서 육손은 관직으로 진출하여 현의 관리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등 백성들의 생활을 개선시키는 데 진력하였다.2 또 오나라는 당시 이민족의 숱한 습격으로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었는데, 육손은 주민들 가운데 지원병을 모집해 쳐들어오는 이민족을 하나하나 격파하고, 투항하는 자는 자기 군세에 가담시켰다. 육손의 그러한 활동에 주목하던 손권은 그에게 형 손책의 딸을 시집보내어 친분 관계를 맺고 종종 정치적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하였다. 육손의 ‘이민족을 하나둘씩 평정하여 그 가운데서 정예병을 선발하여 강력한 군대를 조직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은 손권은 그의 의견에 동의하여 그 실행을 육손에게 맡겼다. 그래서 각지의 이민족은 육손에 의해 점차 토벌되어 정예병으로 흡수되었다.
관우와의 대립
오나라와 촉한 간에 형주를 둘러싼 대립이 일어나고 있던 도중 전선 사령관이었던 여몽이 병에 걸려 귀환길에 오르게 되었다. 여몽이 전선을 이탈하면 조만간 그를 경계해 북쪽으로의 진격을 망설였던 관우가 필시 방심하여 올 것이라 여기고, 육손을 자기 진영으로 불러들여 관우가 방심한 틈을 노려 형주를 빼앗으라고 지시하였다. 여몽은 오나라로 돌아와 손권에게 그 점을 진언하고, 자기 대신 형주 수비를 맡을 사람으로 육손을 추천하였다.
여몽의 후임이 된 육손은 관우에게 매우 겸손한 내용의 서신을 보내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안심하고 를 침공한 관우는 여몽의 계략에 허를 찔려 패배하고 사로잡혀 처형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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