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적
육적(陸績, 188년 ~ 219년)은 중국 후한 말의 관료이자 학자로, 자는 공기(公紀)이며, 오군 오현(吳縣) 사람이다.
출생~사망 188년 ~ 219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5
육적(陸績, 188년 ~ 219년)은 중국 후한 말의 관료이자 학자로, 자는 공기(公紀)이며, 오군 오현(吳縣) 사람이다.
생애
회귤 고사
육적이 6살(193년) 때, 구강에서 원술(袁術)을 뵈었다. 원술이 귤을 내왔는데, 육적은 그 중 셋을 품었다. 육적이 떠날 때, 원술에게 배례를 하다 귤을 땅에 떨어트렸다. 원술이 “육랑은 손님으로 왔으면서 왜 귤을 품었지?”라고 묻자, 육적은 “돌아가서 어머니께 드리고자 하였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원술은 이 대답을 듣고 기이히 여겼다.1
원나라 곽거경(郭居敬)이 지은 《이십사효》에도 이 일화가 수록되어, 훗날 “회귤고사”, “육적회귤”, “회귤”이라 하여 지극한 효성을 일컬을 때 인용되었다.
손씨를 섬기다
손책(孫策)은 오군에 있으면서, 장소(張昭), 장굉(張紘), 진송(秦松)을 상빈으로 모셨다. 이들은 사해가 아직 태평하지 않으므로, 마땅히 무력으로써 다스려 평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육적은 나이가 어렸는데, 멀리서 크게 외쳐 관중(管仲)과 제 환공(桓公)의 패업과 공자(孔子)의 말을 들어, 이들이 덕이 아닌 무력에 의한 통치만을 주장하는 것을 비판하여 장소 등을 놀라게 했다.1
육적은 용모가 웅장하고 박학다식하여, 천문, 역법, 산술 등 읽지 않은 것이 없었다. 우번(虞翻)은 옛날부터 명성이 있었고, 방통(龐統)은 형주의 유명한 선비인데, 모두 육적과 친교를 맺었다.1
방출, 저술, 죽음
손권(孫權)이 정사를 통괄하게 되자 육적을 초빙하여 주조연으로 삼았으나, 직선적인 태도로 인해 꺼림을 받게 되어 울림태수로 전임되고, 편장군을 더하여 병사 2천 명을 받았다. 육적은 다리에 병이 있었고, 선비로서 학문에 뜻이 있었으므로, 병사를 거느리고 싸우는 것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육적은 군무 중에서도 저술을 폐하지 않아, 《혼천도》를 짓고, 《주역》에 주를 달고, 《태현》을 풀이했는데, 모두 세상에 남았다.1
육적은 자신이 죽을 날을 미리 알고, 사를 지었다. “한의 지사 육적은 어려서는 《시경》, 《상서》를 익혔고, 장성해서는 《예기》, 《주역》을 익혔으나, 명을 받아 남정하던 중, 질병에 걸려 위독해졌구나! 내가 만난 수명은 길지 못하니, 오호라, 세상과 격리됨이 슬프구나!”또 말했다. “지금부터 60년이 지나면, 수레는 궤를 같이하고, 글은 문자를 같이할 것인데, 이를 보지 못하니 원통하구나!”육적은 32세에 죽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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