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첨
윤인첨(尹鱗瞻, 1110년 ~ 1176년)은 고려 중기의 문신이다. 초명은 영첨(英瞻), 본관은 파평이며, 자는 태조(胎兆)이다. 윤언이의 아들이다.
출생 1110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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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110년
윤인첨(尹鱗瞻, 1110년 ~ 1176년)은 고려 중기의 문신이다. 초명은 영첨(英瞻), 본관은 파평이며, 자는 태조(胎兆)이다. 윤언이의 아들이다.
생애
1132년 인종 연간에 과거에 급제했다. 당시 지공거 최자성의 출제 오류로 인해서 과거 급제가 취소될 뻔 했지만 윤인첨의 장인인 한유충의 노력으로 급제자 신분을 유지했다.
의종 때 시어사가 되었으나 고관에게 밉보여서 좌사원외랑으로 좌천되었다가 기거주가 되었다.
1153년 사은사로 금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형부시랑을 거쳐 서북면병마사가 되었는데 이 때 금나라와 관련된 일을 당했으나 조정에 보고하지 않았다. 1169년에 우간의대부로 내직에 복귀했다.
1170년, 무신정변이 일어나자 수많은 문신들이 참살되는 중에도 윤인첨은 무관들과의 친분 및 윤관의 손자라는 점 때문에 목숨을 건졌다. 명종이 즉위하자 그는 국자감대사성에 올랐다가 지추밀원사, 참지정사를 거쳐 판병부사를 겸했으며 1172년에 중서시랑평장사로 승진하였다. 동북면병마사 겸 행영병마판사 겸 중군병마판사가 되었다.
1173년 김보당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이의방은 그를 김보당과 한패라고 여겨 제거하려 했으나, 유응규의 도움으로 상황을 면할 수 있었다. 이후 수태사에 오르고 상장군에 올라서 중방에 참여하게 되었다.
1174년 조위총에 의해 조위총의 난이 일어나자 그는 기탁성, 진준, 경진, 최충렬, 두경승 등과 함께 반란을 제압하러 가서 1176년에 반란을 진압하였다. 이후 추충정란광국공신 상주국 감수국사가 되지만 이 해에 세상을 뜬다.
윤인첨이 등장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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