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심덕
윤심덕(尹心悳, 1897년 7월 25일~1926년 8월 4일)은 일제강점기의 성악가이자 가수 겸 배우이다. 호는 수선(水仙)으로, 일본 도쿄 음악 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돌아와 순회공연에 출연하여 성악가로 명성을 떨치고 토월회 등에서 배우로 활약하였다. 1925년에 대중 가수로 전향하여 《사의 찬미》로 인기를 끌고, 일본에 레코드를 취입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연락선에서 애인 김우진과 함께 대한해협에 투신하여 정사(情死)하였다.
출생~사망 1897년 7월 25일 ~ 1926년 8월 4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0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897년 7월 25일 ~ 1926년 8월 4일
- 성별
- 여성
- 장르
- 서양 고전음악, 대중가요
- 활동 시기
- 1924년 ~ 1926년
- 위치
- 39.0167, 125.7475
윤심덕(尹心悳, 1897년 7월 25일~1926년 8월 4일)은 일제강점기의 성악가이자 가수 겸 배우이다. 호는 수선(水仙)으로, 일본 도쿄 음악 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돌아와 순회공연에 출연하여 성악가로 명성을 떨치고 토월회 등에서 배우로 활약하였다. 1925년에 대중 가수로 전향하여 《사의 찬미》로 인기를 끌고, 일본에 레코드를 취입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연락선에서 애인 김우진과 함께 대한해협에 투신하여 정사(情死)하였다.1
생애
평양에서 4남매 가운데 둘째 딸로 태어났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진남포로 이주하여 자랐다. 아버지 윤호병과 어머니 김씨는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 신교육을 받도록 했다. 윤심덕은 숭의여학교를, 언니와 여동생은 이화학당을, 남동생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윤심덕의 형제들은 모두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여동생은 피아니스트이고 남동생 윤기성은 바리톤 성악가였다. 1920년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에서 주최한 도쿄 음악학교 동창회의 음악회에서 피아노 듀엣곡의 일종인 네 손을 위한 피아노 작품을 연주했던 윤성덕이 동생이다.
윤심덕도 평양의 숭의여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에는 의사와 교사가 되기 위해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다녔다가, 음악 공부에 뜻을 두었다. 조선총독부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쿄로 건너간 뒤, 아오야마가쿠인을 거쳐 도쿄 음악학교를 졸업했다. 윤심덕은 도쿄 음악 학교 최초의 조선인 학생이었다.
윤심덕은 활달한 성격이라 도쿄의 남자 유학생들과 잘 어울렸다. 키가 크고 목이 긴 서구형 외모에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2 1921년에는 유학생들이 계획한 순회공연에 참여했다가 극작가이며 학생인 을 만나게 되었다. 김우진은 부인과 자녀가 있는 유부남이었다.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윤심덕」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r37890984)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여자 목록은 원문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0 · r14557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