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렴
요사렴은 중국 당나라 초기의 역사가이다. 자는 간지이다. 일설에는 이름이 간이고 자가 사렴이라고도 한다. 본관은 오흥군 무강현(현재의 저장성 후저우시 더칭현)이다.
출생~사망 557년 ~ 637년마지막 수정 2026. 10. 16. 오후 4:27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557년 ~ 637년
요사렴(요 사렴, 557년 - 637년)은 중국의 당 초기의 역사가이다. 자는 간지이다. 일설에는 이름이 간이고 자가 사렴이라고도 한다. 본관은 오흥군 무강현(현재의 저장성 후저우시 더칭현)이다.
경력
진의 이부상서 요찰의 아들로 태어났다. 요찰은 양과 진의 두 역사서를 저술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였다. 사렴은 어려서 아버지에게 『한서』를 배웠다. 처음에는 진의 회계왕 주부로 벼슬하였고, 수에 들어가 한왕부 참군사가 되었다. 아버지의 상을 치르기 위해 벼슬을 그만두었고, 상이 끝나자 하간군 사법서좌가 되었다. 양제의 명을 받아 최조준과 함께 『구우도지』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후 대왕 시독에 임명되었다. 이연이 장안을 점령한 뒤에도 대왕 양유의 측근으로서 올바른 말을 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당이 건국된 뒤 이세민의 진왕부에 불려 가 문학관 학사가 되었다. 현무문의 변 이후 이세민이 황태자가 되자 태자 세마에 임명되었다. 정관 초년에 저작랑 겸 홍문관 학사에 임명되었다. 위징과 함께 양과 진의 두 역사서를 편찬하라는 명을 받았다. 정관 10년(636년)에 『양서』(50권)와 『진서』(30권)를 완성하였으며, 후세에 둘 다 이십사사에 편입되었다. 산기상시가 되었고, 풍성현 남작에 봉해졌다. 정관 11년(637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태상경의 지위를 추증받고 소릉에 배장되었다. 시호는 강이다.
또한 저서로 『문사박요』가 있었다.
전기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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