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해전
1592년 음력 5월 29일 이순신의 제2차 출전 첫 싸움으로, 사천 선창의 일본 함대를 바다로 유인해 13척을 격파한 해전. 거북선이 처음 실전에 투입되었고 이순신이 총탄에 맞았다.
시작 1592년 7월 8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상세 타임라인
개요
사천 해전은 1592년 음력 5월 29일(양력 7월 8일) 경상도 사천의 선창(지금의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일대) 앞바다에서 벌어졌다. 이순신의 제2차 출전 첫 싸움이며, 거북선(龜船)이 처음으로 실전에 나선 해전이다. 이순신은 이 싸움에서 어깨에 총탄을 맞았으나 끝까지 지휘하였다.
배경
제1차 출전 뒤 이순신은 일본 수군이 서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원래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함께 6월 3일 출전하기로 약속하였으나, 일본 배가 사천·곤양 쪽까지 들어왔다는 원균의 급보를 받고 이억기를 기다리지 않고 출전하였다. 거북선은 출전 직전인 음력 4월 무렵 완성되어 시험을 마친 상태였다.
경과
- 5월 29일: 거북선을 포함한 전선 23척(『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으로 여수를 떠나 노량에 이르러 원균의 배 3척과 합류하였다.
- 사천 선창: 일본 배 12척이 선창에 줄지어 정박해 있었고, 일본군 수백 명이 산 위에 진을 치고 있었다. 썰물로 물이 빠져 판옥선이 포구 깊이 들어가기 어려웠다.
- 유인: 이순신은 거짓으로 물러나는 척하여 일본군을 바다로 끌어냈다. 일본군 일부가 배에 올라 쫓아오자 함대는 돌아서서 공격하였다.
- 거북선 돌격: 거북선이 먼저 적선 사이로 들어가 천자·지자·현자총통 등을 쏘았고, 뒤이어 판옥선들이 화포와 화살로 공격하여 일본 배를 모두 깨뜨렸다.
- 부상: 이 싸움에서 이순신은 왼쪽 어깨에 조총 탄환을 맞았으나 끝까지 활을 쏘며 지휘하였다. 군관 나대용 등도 부상을 입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여러 자료는 이날 격파한 일본 배를 13척으로 적는다.
결과와 영향
사천에서 승리한 함대는 사량도로 옮겨 머물렀다가 이튿날부터 당포 해전, 당항포 해전, 율포 해전으로 이어지는 제2차 출전을 계속하였다. 거북선은 판옥선 위에 덮개를 씌우고 쇠못을 꽂아 적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한 배로, 적진 한가운데로 돌입하여 대열을 흐트러뜨리는 돌격선 역할을 하였다. 사천 해전을 기념하여 5월 29일 무렵을 '거북선의 날'로 기리는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이설
격파한 일본 배의 수는 13척이 널리 쓰이지만 다른 수를 적은 자료도 있다. 출전 함대의 수, 원균이 데려온 배의 수도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다. 사천 해전 기간을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로 보는 서술도 있다.
참고 자료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 r255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