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소
사마소(司馬昭, 211년 ~ 265년)는 중국 삼국시대 조위의 정치가로, 자는 자상(子上)이며 하내군 온현(溫縣) 사람이다. 사마의의 아들이자 사마사의 동생이며, 서진의 초대 황제인 사마염의 아버지이다.
출생~사망 211년 ~ 265년 9월 6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5
사마소(司馬昭, 211년 ~ 265년)는 중국 삼국시대 조위의 정치가로, 자는 자상(子上)이며 하내군 온현(溫縣) 사람이다. 사마의의 아들이자 사마사의 동생이며, 서진의 초대 황제인 사마염의 아버지이다.
생애
아버지 사마의와 형 사마사를 따라 제갈량의 북벌에 맞서 싸우면서 활약했고, 아버지 사마의의 뒤를 이은 형 사마사와 같이 위나라의 정권을 잡았다.
왕릉이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소는 군을 이끌고 이를 격파하였다. 강유가 늘 군을 이끌고 농우를 공격했는데, 사마소가 군을 이끌고 여러 차례 막았다. 또한 강유가 강족과 연합하여 위나라를 공격하자 사마소가 군을 이끌고 강족을 격파하니, 강족의 여러 병사들은 사마소에게 투항하였다. 이 공으로 인하여 신성향후에 봉해졌다.
255년, 위나라 황제 조방이 사마사에게 폐위당하자 관구검이 문흠과 결탁하여 회남에서 반란을 하였다.
사마소는 군을 통솔하여 관구검,문흠을 격파하여 관구검은 죽고 문흠은 오나라로 도주하였다. 형 사마사가 죽자 이에 사마소가 위장군으로 승진하였다. 감로2년 제갈탄이 양주자사 악침을 죽이고 회남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사마소는 친히 병사를 이끌고 나아가서 오나라를 먼저 격파하고 제갈탄까지 격파하는 활약을 하였다. 제갈탄은 수춘으로 도주하였고, 사마소는 수춘을 포위하였다. 문흠이 군을 이끌고 여러차례 공격하지만 사마소는 이를 격파하였다. 손침이 또 제갈탄을 도와주러 군을 이끌고 사마소를 공격했지만 사마소가 오나라의 장수 손침을 격파하였다.
사마소가 거짓으로 "오나라의 구원이 온다" 라고 수춘에 헛소문을 퍼트리게 하자 제갈탄은 방심하여 군량을 아끼지 않고 사용하여 군량이 떨어졌고, 수춘의 병사들은 사마소에게 투항했다. 제갈탄이 늘 문흠이랑 사이가 좋지 않았으므로 문흠이 늘 사마소에게 패하자, 의심 끝에 제갈탄이 문흠을 죽였다. 이에 그의 아들 문앙, 문호가 사마소에게 투항하고 사마소는 문앙에게 시켜 적들에게 항복을 권하게 하였다. 수춘에서 항복하는 병사들이 많아지자 사마소가 총공격을 하여 제갈탄을 참수하고 제갈탄의 삼족을 멸하였다.
이 공으로 사마소를 상국으로 봉했다.
사마소가 가충(賈充)을 보내 조모(曹髦)의 죽임을 벼르고 있던 차에, 더욱 큰 위협을 느낀 당시 위의 천자 조모는 사병 300명을 풀어 사마소를 죽일 계책을 펼친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사마소는 조모의 계략을 무마시키고 이를 빌미로 천자를 살해했다. 그 후 (曹奐)을 앞세워 위의 천자로 옹립함으로써 사실상 사마소는 위의 모든 전권을 잡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전권을 토대로 자신 스스로를 진왕(晋王)에 봉한다. 그 후 대륙의 통일을 위해 전쟁을 준비한다. 이때 (姜維)에게 의지하며,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는 가 환관 (黃皓)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것을 알자, 곧바로 그는 당대 위의 노장 (鄧艾)와 젊은 장수 (鍾會)에게 명해 촉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결국 가 촉의 험난한 산세를 타넘어, 정면길을 택했던 보다 더 빠른 시간에 를 항복시키며 그가 내린 토벌령을 수행하게 된다. 이후 그는 결국 잡혀온 촉의 후주 (劉禪)의 마음과 인물됨을 시험하기 위해 술자리를 갖게 되는데 그를 시험키 위해 면전 앞에 두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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