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주 무제
주 고조 무황제 우문옹(周 高祖 武皇帝 宇文邕, 543년 ~ 578년 6월 21일)은 중국 남북조 시대 북주의 제 3대 황제(재위:560년 ~ 578년)이다. 서위의 권신 우문태의 넷째 아들이다.
출생~사망 543년 ~ 578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3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543년 ~ 578년
- 재위
- 560년 5월 31일 ~ 578년 6월 21일
- 즉위식
- 무성(武成) 2년 4월 21일, (560년 5월 31일)
- 전임
- 명제(明帝)
- 후임
- 선제(宣帝)
- 재위
- 559년 11월 2일 ~ 560년 5월 31일
- 즉위식
- 무성(武成) 원년 9월 17일, (559년 11월 2일)
- 재위
- 554년 6월 5일 ~ 559년 11월 2일
- 즉위식
- 서위 공제(恭帝) 원년 4월 20일, (554년 6월 5일)
- 휘
- 우문 옹(宇文 邕)
- 묘호
- 고조(高祖)
- 시호
- 무황제(武皇帝)
- 능호
- 효릉(孝陵)
- 사망일
- 선정(宣政) 원년 6월 1일, (578년 6월 21일) (34 - 35세)
- 부친
- 문황제(文皇帝) 우문 태(宇文 泰)
- 모친
- 문선황후(文宣皇后) 질노씨(叱奴氏)
- 배우자
- 무성황후(武成皇后) 아사나씨(阿史那氏), 제태후(帝太后) 이아자(李娥姿)
주 고조 무황제 우문옹(周 高祖 武皇帝 宇文邕, 543년 ~ 578년 6월 21일(음력 6월 1일))은 중국 남북조 시대 북주의 제 3대 황제(재위:560년 ~ 578년)이다. 서위의 권신 우문태의 넷째 아들이다.
생애
560년, 형인 명제(明帝)를 시해한 권신이자 사촌형 우문호(宇文護)에 의해 꼭두각시 황제로 옹립되었다.
이후 힘을 길러 우문호를 숙청1한 뒤 572년 친정을 시작한 무제는 거대한 권력, 재산, 토지를 소유한 도교와 불교를 탄압해 재산을 몰수하고, 일반 승려와 도사를 병사로 강제 징병했다. 한편으로 유교, 불교, 도교를 모아 3교의 연구기관으로 통도관을 설치해 우수한 승려나 도사를 학사로서 수용하여 폐불을 단행하였다. 이를 종교계에서는 2번째 '삼무일종의 폐불'이라고 한다.
무제는 575년 북제(北齊)를 공격해서 577년 북제를 멸망시킨 뒤, 화북을 통일하였다. 그러나 진나라를 공격할 준비를 하다가 578년 병사했다.
가족
조부모와 부모
- 조부 : 덕황제(德皇帝) 우문 굉(宇文 肱)
- 조모 : 명덕황후(明德皇后) 왕씨(王氏)
- 부친 : 태조(太祖) 문황제(文皇帝) 우문 태(宇文 泰)
- 모친 : 문선황후(文宣皇后) 질노씨(叱奴氏)
참고 문헌
각주
Footnotes
-
천화정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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