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팽년
박팽년(朴彭年, 1417년~1456년)은 조선 전기의 문신 겸 학자로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조선국 형조참판, 조선국 좌부승지 등을 지냈다. 본관은 순천(順天). 자(字)는 인수, 호는 취금헌(醉琴軒),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의 학사로 활동했고, 관직은 형조 참판에 이르렀다. 손자 박일산이 생존하여 사육신 중 하위지가와 함께 후손이 전한다. 그의 셋째 딸은 세종의 서자 영풍군의 부인이었다. 봉여해는 그의 매부이며, 박충후는 그의 현손이다.
출생~사망 1417년 ~ 1456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08
박팽년(朴彭年, 1417년~1456년)은 조선 전기의 문신 겸 학자로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조선국 형조참판, 조선국 좌부승지 등을 지냈다.
본관은 순천(順天). 자(字)는 인수, 호는 취금헌(醉琴軒),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의 학사로 활동했고, 관직은 형조 참판에 이르렀다. 손자 박일산이 생존하여 사육신 중 하위지가와 함께 후손이 전한다. 그의 셋째 딸은 세종의 서자 영풍군의 부인이었다. 봉여해는 그의 매부이며,1 박충후는 그의 현손이다.2
생애
조선 세종 때인 1434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삼문 등과 함께 집현전 학사가 되어 편찬 사업에 참가하였고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황보인·김종서 등과 함께 문종과 단종을 보필하였다. 세종 말년에 신숙주, 성삼문, 윤기견, 윤회, 김종서 등과 고려사절요, 고려사의 편찬과 간행에 참여하였다. 1453년 10월 계유정난을 전후해서 좌부승지(左副承旨)가 되었다. 1454년 좌승지(左承旨)를 거쳐 1455년 충청도 관찰사에 제수되었다. 수양대군이 황보인, 김종서, 안평대군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후, 그를 형조참판에 임명하였으나, 세조가 즉위한 다음 해인 1456년, 형조참판의 자리에 있으면서 (成三問)· 박팽년(박팽년)· (李塏) · (河緯地)· (柳誠源)· (金文起) 를 일컫는 말이다. 등과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가 의 밀고로 6월 2일 잡혀가 고문을 받았다. 박팽년은 혹독한 형문을 당하면서도 세조에게 상감, 주상이라 하지 않고, 진사(進賜), 나으리(羅阿里)라고 불렀다. 에서 세조의 친국으로 고문받던 중 6월 7일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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