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축
미축(麋竺, ? ~ 221년)은 중국 후한 말기 ~ 촉한 초기의 정치가로, 자는 자중(子仲)이며 서주 동해국 구현(朐縣) 사람이다.
출생~사망 연도 미상 ~ 221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20
미축(麋竺, ? ~ 221년)은 중국 후한 말기 ~ 촉한 초기의 정치가로, 자는 자중(子仲)이며 서주 동해국 구현(朐縣) 사람이다.
생애
선조 대대로 부유해, 거느린 전객이 1만 명에 달하며 막대한 재물을 가지고 있었다. 미축의 명성을 들은 서주목 도겸이 그를 초빙하여 별가종사로 임명했다.1
당시 도겸은 조조의 침략을 받아, 평원상 유비를 불러 자기를 구원하게 하고 표를 올려 예주자사로 삼았으며 예주 땅 중 서주 근처의 소패(小沛)에 주둔하게 했다. 도겸이 병들어 위독하자, 미축은 도겸에게 '유비에게 서주를 맡기자'며 권했다. 도겸이 죽자 그의 유지를 받들어 서주 사람들을 거느리고 유비를 맞이하여 유비가 서주목을 대행하게 했다.12 건안 원년(196년), 유비가 서주로 쳐들어온 원술과 대치하던 도중 유비에게 의탁한 여포가 하비상 조표와 손잡고 하비를 탈취하여 유비의 처자를 사로잡으니 유비는 근거를 잃고 광릉과 해서 사이를 떠돌았다. 미축은 자기 누이를 유비에게 주고 또 노객 2천과 군자를 댔다.12 조조는 태산군의 일부 현을 갈라내 영군을 설치하면서 당시 편장군을 지내던 미축으로 영군태수를 맡기고 그의 동생 미방은 팽성상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형제는 모두 사직하고 조상 대대로 살던 서주를 떠나, 세력 기반을 잃고 조조, , 등의 밑을 떠도는 를 따라 각지를 전전했다. 유비가 유표에게 들어갈 때, 먼저 미축을 유표에게 보내 만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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