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본왕
모본왕(慕本王, ? ~ 53년 음력 11월)은 고구려의 제5대 국왕(재위 : 48년 ~ 53년 음력 11월)이다. 이름은 해우(解憂) 또는 해애루(解愛婁)이다. 제3대 왕 대무신왕과 그 원비(元妃)의 자식이다. 이복형제 호동과의 태자 다툼에서 승리했다. 그런데 부왕의 뒤는 민중왕이 대신 이었다. 이에 대해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대무신왕이 죽을 때 그의 나이가 어려 숙부 민중왕이 왕위를 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연의 삼국유사에 의하면 모본왕이 민중왕의 형이라 한다. 고구려의 국왕들 중 김부식의《삼국사기》와 일연의《삼국유사》 기록이 서로
출생~사망 30년 ~ 53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1
모본왕(慕本王, ?1 ~ 53년 음력 11월)은 고구려의 제5대 국왕(재위 : 48년 ~ 53년 음력 11월)이다. 이름은 해우(解憂) 또는 해애루(解愛婁)이다. 제3대 왕 대무신왕과 그 원비(元妃)의 자식이다. 이복형제 호동과의 태자 다툼에서 승리했다. 그런데 부왕의 뒤는 민중왕이 대신 이었다. 이에 대해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대무신왕이 죽을 때 그의 나이가 어려 숙부 민중왕이 왕위를 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연의 삼국유사에 의하면 모본왕이 민중왕의 형이라 한다. 고구려의 국왕들 중 김부식의《삼국사기》와 일연의《삼국유사》 기록이 서로 다르게 기록된 군주이다.
민중왕 사후 즉위했으나 성격이 포악해서 원망을 많이 샀으며 결국 왕을 곁에서 모시던 두로에게 살해당했다.
출생
대무신왕과 그 원비에게서 태어났다. 차비(次妃)에게도 아들 호동이 있었는데 모본왕보다도 나이가 많았다. 원비는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만들기 위해 호동을 모함해 자살하게 했다. 고구려 초기 왕족의 성씨는 고씨(高)2인지 해씨(解)3인지 명확하지 않다.충격적인 내용이 나왔는데 광개토대왕비 내용이나 삼국사기 부분에서 모본왕이 대무신왕의 손자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
이러면 모본왕의 아버지는 호동왕자라는 설이 된다. 여기서의 원비는 호동의 아내가 되고 결국 아내인 원비가 남편이 딴 여자에게 눈이 팔리자 참소했다는 설이 되고 성인이 된 모본왕이 흑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생애
32년 호동이 자살한지 한 달만에 태자로 책봉되었으나4 44년 대무신왕이 죽었을 때 아직 나이가 어려서 숙부 해색주(민중왕)가 왕위에 올랐다.5 그런데 다른 설에는 민중왕이 그의 형제라는 설이 있다. 48년 민중왕이 죽고 그가 즉위했다. 이 포악하고 국사를 살피지 못해 백성들이 원망하였다. 이 해 10월 익(翊)을 태자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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