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
후백제(後百濟, 892년~936년)는 892년(신라 진성여왕 6년)에 백제 부흥운동을 시작으로 900년 견훤이 완산주(오늘날의 전주시)를 도읍으로 삼아 세운 나라이다. 공식 국호는 백제(百濟)이나 이전에 존재하였던 백제와 구분하기 위해 후백제(後百濟)로 통용되며 신라, 고려와 더불어 후삼국 중 하나였다. 천수(天授) 19년(서기 936년) 고려 군주 왕건의 대규모 공격으로 인해 44년 만에 패망했다.
건국~멸망 892년 ~ 936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3
후백제(後百濟, 892년~936년)는 892년(신라 진성여왕 6년)에 백제 부흥운동을 시작으로 900년 견훤이 완산주(오늘날의 전주시)를 도읍으로 삼아 세운 나라이다. 공식 국호는 백제(百濟)이나 이전에 존재하였던 백제와 구분하기 위해 후백제(後百濟)로 통용되며 신라, 고려와 더불어 후삼국 중 하나였다.
천수(天授) 19년(서기 936년) 고려 군주 왕건의 대규모 공격으로 인해 44년 만에 패망했다.
역사
견훤은 원래 신라 상주 지방 농민이었다가 신라군에 들어가 서남해 국경방위(西南海防戍)에 공을 세워 비장(裨將)이 되었다. 이때 신라는 진성여왕 때 정치와 사회가 극도로 문란해져 있었다. 견훤은 892년 거병하여 무진주(광주)를 점령한후 독자적인 세력임을 선포하였다. 《삼국사기》는 그가 이르는 곳마다 백성들이 호응하여 그 무리가 한 달(旬月) 만에 5천 명이 되었다고 전한다. 그 후 900년에 백제 의자왕의 숙원을 풀어주겠다며 백제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국호를 백제로 하고 완산주(전주)를 도읍으로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모든 관서(官署)를 설치하고 관직을 정하였으나, 관서와 관직명은 전하는 것이 없어 잘 알 수가 없으며 신라의 관제를 답습한 듯하다.
견훤은 건국하면서 중국의 오월(吳越)과 통교를 하는 한편 영토를 확장하기에 바빴다.
901년(효공왕 5) 대야성을 공격하고 918년(경명왕 2)에 왕건의 고려 건국을 하례하여 외교적으로 유대를 가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920년(경명왕 4)에 견훤이 대야성을 공격하고 진례성(進禮城)1으로 진격할 때 신라는 왕건에게 구원을 청하여 그 도움을 얻었다. 이로 인하여 후백제와 고려와의 사이는 좋지 못하게 되고 반대로 신라·고려의 관계는 친밀하게 되어 후백제에게 공동의 적으로 종종 행동을 가해 왔다. 이에 견훤은 먼저 신라를 징벌(徵伐)하려고 927년( 4) 11월에 대병을 거느리고 신라의 수도 금성에 쳐들어가 (鮑石亭)에서 잔치를 벌여 흥에 취하고 있는 틈에 수도 를 습격했다.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후백제」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r38566027)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여자 목록은 원문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3 · r33258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