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월
팽월(彭越, ? ~ 기원전 196년)은 중국 초한쟁패기, 전한 시대의 인물로 한 고조를 도와 전한 왕조를 세우는데 기여한 개국공신이다. 자는 중(仲)이다.
출생~사망 연도 미상 ~ 기원전 196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20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연도 미상 ~ 기원전 196년
- 로마자 표기
- Peng Yue
- 사망
- 기원전 196년
- 성별
- 남성
- 국적
- 중국
- 경력
- 초한쟁패기, 전한 시대
- 직업
- 군인, 개국공신
- 소속
- 전한
- 위치
- 35.3833, 116.0833
팽월(彭越, ? ~ 기원전 196년)은 중국 초한쟁패기, 전한 시대의 인물로 한 고조를 도와 전한 왕조를 세우는데 기여한 개국공신이다. 자는 중(仲)이다.
생애
거병
창읍 출신으로, 거야택에서 도적떼를 이끌다가 진 이세황제 원년(기원전 209년) 진승과 오광이 진나라의 폭정에 맞서 봉기하자 당장은 장초와 진나라의 싸움을 방관하다가, 1년여 후에야 세력을 일으켰다. 이때 거야택의 1백여 소년들이 팽월에게 거병하도록 권했는데, 누차 거절하다가 승락했다. 그리고 이들과 모이기로 한 날에 늦는 자는 참수하기로 했으나, 늦은 사람이 10여 명으로 너무 많아 가장 늦게 온 자를 죽였다.1
패공 유방이 창읍을 공격하자 유방을 도왔으나, 창읍은 함락되지 않았고 유방은 관중으로 방향을 돌렸다. 팽월은 그대로 남았고, 이전에 위나라는 진나라와의 싸움에 져 왕 위구가 자결했는데, 팽월은 이 위나라의 패잔병들을 모았다.1
초한쟁패기의 활약
기원전 206년, 항우가 진나라를 멸하고 각지에 제후들을 봉건할 때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제나라의 실권자로 자신이 모신 전시가 교동왕으로 이봉되자 불만을 품은 전영에게서 장군의 인수를 받아 제음에서부터 초나라를 공격해, 자신을 요격하러 온 초나라 장수 소공 각(簫公角)의 군대를 대파했다. 한왕 2년(기원전 205년), 한왕 유방이 위구의 아우인 서위왕 위표 등 여러 제후들과 함께 서초를 치러 오자, 자기 군사 3만여와 함께 외황에서 한나라에 귀순했다. 한왕에게서 옛 위나라 땅의 10여 성을 가지고 있다 하여 위표의 재상이 됐고, 옛 위나라 땅이었으나 서초에 편입된 양나라 일대를 평정했다.1
그러나 한왕이 팽성 전투에서 대패하자, 가지고 있던 모든 성을 잃고 황하 유역을 떠돌았다. 한왕 3년(기원전 204년), 세력을 다시 내 한나라 편에서 유격전을 펼쳐, 양 주변에 있는 초나라 군대의 군량을 끊었다.1 한왕 4년(기원전 203년), 한왕과 서초패왕이 공성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초나라의 동아를 공격해 초나라 장수 설공(薛公)을 죽였다. 그러자 한왕은 자신의 형 를 보내 함께 초나라의 군량을 태우게 했다. 이후 서초패왕의 공격에 패했으나 그 틈에 한왕은 잃은 성고를 회복하고 광무까지 진격했다. 서초패왕이 한왕에게로 돌아가 광무에서 대치하자, 다시 일어나 초군의 양도를 여러 차례 끊었기 때문에 서초패왕은 근심하여 사로잡은 한왕의 일가족으로 한왕을 협박했으나 별 수가 없었다. 수양·외황 등 열일곱 성을 점령하여 또 양나라 땅을 차지하고 초군의 군량을 끊었고, 결국 서초패왕은 에게 성고의 진영을 맡기고 팽월을 공격하니, 곡성으로 패주했다. 그러나 서초패왕에게 완전히 평정되기 전에 한왕이 조구를 무찔렀고, 서초패왕은 다시 대치하러 돌아갔다. 이러한 팽월의 유격전은 상당히 성공적이어서, 결국 서초패왕은 군량이 궁해져 더 싸울 수 없어 한왕 5년(기원전 202년)에 한왕과 협정을 맺고 양하로 옮겼다. 그러자 창읍 일대 20여 성을 빼앗고 군량 10여 만 휘를 얻어 한왕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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