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성 전투
1592년 음력 8월 1일 의병장 조헌과 승장 영규가 관군과 함께 일본군이 점령한 청주성을 공격하여 되찾은 전투.
시작 1592년 9월 6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상세 타임라인
개요
청주성 전투는 1592년 음력 8월 1일(양력 9월 6일) 의병장 조헌(趙憲)의 의병과 승장 영규(靈圭)의 승병이 방어사 이옥 등 관군과 함께 충청도 청주성을 공격하여 되찾은 싸움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임진왜란」 전투표는 8월 1일 영규 등이 청주를 수복했다고 적는다. 충청도에서 의병과 승병이 처음으로 성을 되찾은 전투로 꼽힌다.
배경
청주는 일본군 제3군이 추풍령을 넘어 한양으로 가던 길에 있어 일찍 점령되었고, 이후 일본군이 남겨 둔 부대가 주둔하며 주변을 약탈하였다. 옥천 출신의 조헌은 전 제독관으로, 공주와 청주 일대에서 천수백 명의 의병을 모았다. 공주 갑사 청련암에 있던 승려 영규는 승병 수백 명을 이끌고 일어났다. 두 사람은 함께 청주성을 치기로 하였다.
경과
- 7월 하순: 영규의 승병이 먼저 청주 서문 밖에 진을 치고 일본군과 싸웠다.
- 8월 1일: 조헌의 의병과 영규의 승병, 관군이 합세하여 서문 쪽으로 성을 공격하였다. 일본군이 성 밖으로 나와 맞섰으나 의병과 승병이 앞장서 싸워 물리쳤다. 마침 큰비가 내려 싸움이 멈추었다.
- 그날 밤: 일본군은 성안의 시체를 불태우고 북문으로 빠져나가 달아났다. 이튿날 조선군이 성에 들어갔다.
결과와 영향
청주성 수복으로 충청도의 일본군 거점 하나가 사라졌고, 의병·승병의 활약이 조정에 알려졌다. 조헌은 이 기세를 몰아 근왕하려 하였으나 충청도순찰사 윤선각(윤국형)과 의견이 맞지 않아 많은 군사가 흩어졌다. 그는 남은 700명 정도를 이끌고 영규와 함께 금산의 일본군을 치러 갔다가 8월 18일 전사하였다(금산 전투).
이설
청주성을 되찾은 날짜는 8월 1일로 적는 경우가 많으나, 일본군이 물러간 다음 날(8월 2일)을 수복일로 보기도 한다. 의병과 승병의 수, 청주에 주둔한 일본군의 소속과 규모는 자료마다 다르다.
참고 자료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 r250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