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시대
전국 시대(戰國時代, 영어: Warring States period, 기원전 476년 또는 기원전 403년 ~ 기원전 221년)는 중국 역사의 혼란기로, 기원전 476년(기원전 403년)부터 진(秦)나라가 중국 통일을 달성한 기원전 221년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 그 시기의 이야기가 주로 《전국책》(戰國策)에서 등장하므로 전국시대라 불린다.
시행~폐지 기원전 476년 ~ 기원전 221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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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행 ~ 폐지
- 기원전 476년 ~ 기원전 221년
전국 시대(戰國時代, 영어: Warring States period, 기원전 476년 또는 기원전 403년 ~ 기원전 221년)는 중국 역사의 혼란기로, 기원전 476년(기원전 403년)부터 진(秦)나라가 중국 통일을 달성한 기원전 221년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 그 시기의 이야기가 주로 《전국책》(戰國策)에서 등장하므로 전국시대라 불린다.
기준점
전국 시대를 춘추시대와 구분하는 기준은 역사가마다 조금씩 다르다. 우선 전국시대의 어원이된 전국책은 전국시대 나라들의 일화를 모은책이라 특별한 기준점이 없다. 다만 그중 동주책 1권의 첫이야기가 주나라 천자의 상징물인 구정을 제후국인 진나라와 제나라가 요구하고 주나라 대부 안율이 이를 지켜내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후 사마천은 자신의 역사서 사기의 전국시대 역사표인 육국연표 서문에서 제나라의 전상이 제 간공 강임을 살해하고 진(晉)나라에서는 대부 조(趙), 위(魏), 한(韓)씨가 실권자 지백을 공격해 제거했는데 천자국 주나라가 이를 묵인하고, 후대에는 제나라와 진나라의 제후를 끌어내리고 스스로 제후가 되었는데 이것을 주나라가 공인해준 사건을 주목해 육국연표의 시작을 진나라 내전이 있었던 진나라 여공공의 즉위년(기원전 476년)을 기준으로 한다. 자치통감에서도 사마천처럼 지백사건에 주목해 진나라의 멸망을 전국시대의 기준점으로 삼았다(기원전 422년). 개별사건마다 간극이 넓기는 하지만 공통적인 부분은 기원전 400년대에 주나라 천자의 권위가 심각하게 실추되고 제후국에 대한 미약한 통제력마저 완전히 상실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나라 봉건제도의 붕괴
한·위·조가 후(侯)라고 칭해졌다는 것은 단순히 하극상을 의미한 것만이 아니라 주왕이 이를 인정하고 스스로 종법제(宗法制)를 번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정이 배경에 있기에 그 맥락을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 이윽고 강력한 제후들은 스스로 왕(王)을 칭하게 됨으로 이 때부터 명실공히 주왕조의 권위가 떨어지고 그 시기까지 중원에서 나름대로의 사회적 질서와 정치적 균형을 유지시켜오던 봉건제도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결국 붕괴되어 버리는 시발점이 된다. 얼마 후 제(齊)나라도 기존의 강씨(姜氏)를 대신하여 전씨(田氏)가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부터 각 제후들이 주나라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지향해 제각기 왕을 칭하였다. 거기에 춘추 시대 초창기부터 주나라의 권위에 불복하던 초나라도 이시기즘 140여 개국이었던 도시국가의 거의 모두가 이 때에 와서 7개 강대국 중 어느 한 영토에 편입되어 버렸다.
처음 강력했던 나라는 위나라였다. 문후(文侯)·혜왕(惠王)은 널리 인재를 구하여 대규모 관개사업을 벌이고, 한편으로는 지배한 지역을 군현화(郡縣化)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다음 제(齊)가 패권을 쥐었지만 얼마 안 있어 변경의 진(秦)·연(燕)이 강대해져 세력을 팽창함으로 인해 비로소 중원은 진·초·연·제·한·위·조의 7웅이 할거하는 형세로 바뀌었다. 그 중 진은 효공(孝公) 때 상앙의 변법에 의하여 크게 부국강병(富國強兵)의 성과를 올려 다른 나라를 누를 수 있는 힘을 보여주게 된다. 소위 합종연횡(合從連衡)이 제창된 것도, 또 4군(君)의 활약이 있었던 것도 이 시기였다. 이윽고 6국이 진(秦)에 굴복당하고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가 출현하게 되었다.
전국 시대는 봉건제에 따르는 읍제국가가 해체되고 중앙집권적인 군현제에 의한 고대 통일국가가 형성되는 과도기에 해당한다. 전국 시대가 되자, 사 계급 출신의 관료가 실제의 정치를 장악하게 되어, 그 최고 지위에 상(相)이 놓인다. 그 임무는 군주를 보좌하여 정치의 전반을 총리하는 일이었는데, 이것은 종래의 대부 등과는 달라서 세습이 허용되지 않았다. 또한 군제(軍制)에 있어서도 이 때까지는 대부가 세습적으로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임에 반하여 장군이라는 직위가 신설되어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군주에 의해 장군이 임명되기에 이르렀다. 서주(西周)로부터 춘추 시대에 걸쳐서는 정치·군사 양면에 있어서 대부가 세습적으로 권리를 가지고 있었음에 반하여, 전국 시대가 되자 정치·군사가 분리되고 저마다의 책임자가 필요에 따라서 군주에 의해서 임명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군주권이 강화되는 한편, 능력에 따른 관료군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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