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왕
장수왕(長壽王, 394년 ~ 491년 음력 12월)은 고구려의 제20대 국왕(재위 : 412년 음력 10월 ~ 491년 음력 12월)이다.
출생~사망 394년 ~ 491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45
장수왕(長壽王, 394년 ~ 491년 음력 12월)은 고구려의 제20대 국왕(재위 : 412년 음력 10월1 ~ 491년 음력 12월)이다.
광개토대왕의 맏아들로 휘는 거련(巨連·巨璉) 혹은 연(璉)이다. 97세까지 장수했기 때문에 장수왕이라는 시호가 붙었다.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어갔으며 평양으로 천도하여 남진정책을 추진하였고 중국의 남북조와 등거리 외교를 통해 안정을 구가한 군주다. 대한민국 충청북도 충주시에 장수왕이 423년에 세운 충주 고구려비(中原 高句麗碑)가 있다.
생애
장수왕은 광개토대왕의 맏아들로 394년에 태어났으며, 모후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몸과 얼굴이 크고 잘 생겼으며 뜻과 기운이 호걸을 초월하였다고 하며, 409년에 태자에 책봉되었고, 412년 음력 10월에 광개토왕이 죽자 18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연가(延嘉), 연수(延壽), 건흥(建興) 등의 연호가 새겨진 유물이 일부 발견되고 있어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414년에 광개토 대왕릉비를 건립하여 광개토왕의 업적을 기렸으며, 423년(추정)에는 충주 고구려비를 세워 고구려의 위상을 널리 선포하였다.
장수왕은 내부적으로 왕권의 위상을 높여서 국내성의 귀족세력을 약화시키고, 남진정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427년에 평양성으로 천도하였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남조(南朝)의 여러 왕조들과 북조(北朝)의 북위에 모두 화친을 맺고 조공을 바치는 등거리 외교를 통해 정세를 안정시켰다. 북위와는 풍홍의 망명이나 후궁을 보내는 문제로 일시 마찰을 빚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꾸준히 우호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고구려 및 장수왕의 국제적 위상은 매우 높았으며, 장수왕은 높은 직위로 책봉을 받았고 고구려의 사신 또한 높은 대우를 받았다. 북위는 고구려의 조공을 특별하게 우대하여 472년에는 타국보다 더 자주, 더 많이 조공을 할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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