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방
윤방(尹昉, 1563년 6월 22일 ~ 1640년 8월)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해평. 자는 가회(可晦), 호는 치천(稚川)이다.
출생~사망 1563년 ~ 1640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57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563년 ~ 1640년
- 출생일
- 1563년 6월 22일
- 사망일
- 1640년 8월
- 국적
- 조선
윤방(尹昉, 1563년 6월 22일 ~ 1640년 8월)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해평. 자는 가회(可晦), 호는 치천(稚川)이다.
윤두수의 장남이다. 율곡 이이(李珥)의 문인이다. 과거에 급제한 후 삼사의 청요직을 거쳐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의 어가를 의주까지 호종하였다. 그 뒤 삼사의 요직을 두루 거쳐 1597년 경상도수어사로 나가 민심을 수습하고 돌아와 군기감정 등을 지냈다. 1597년에는 순안독찰로 민심을 수습하고 군량을 조달하였으며 아들 윤신지가 해숭위가 되었다. 그 뒤 아버지 윤두수 사후 습봉하여 해창군, 해평부원군 등을 거쳐 해창부원군에 봉작되었다. 광해군 즉위 초 형조판서가 되고 이후 한성부 판윤, 판의금부사 등을 거쳐 1614년(광해군 6년) 8월 27일 위성원종공신 3등(衛聖原從功臣三等)에 책록되었다. 1618년(광해군 10) 인목대비 폐모논의에 불참, 사직했다가 1623년(광해군 15년) 3월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집권하자 예조판서에 등용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 때는 인조를 강화도까지 호종했으며, 영의정을 거쳐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묘사제조로서 신주를 남한산성까지 모셨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생애
치천 윤방은 1563년 영의정을 지낸 오음 윤두수(尹斗壽)의 장자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관찰사 황기(黃琦)의 손녀이자 참봉 황대용(黃大用)의 딸이다.
일찍이 율곡 이이(李珥)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82년(선조 15) 진사가 되고 1588년 식년문과에 급제후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등을 지냈다. 1591년 예문관검열 겸 춘추관기사관과 예문관 봉교, 이후 예조좌랑, 사헌부지평 등을 거쳐 1591년 아버지 윤두수가 동인과의 정쟁으로 유배당하자 사직했다가 다시 복귀하여 정언(正言) 등을 지냈다.
예문관검열 겸 춘추기사관으로 있을 때 아버지 두수가 당화를 입어 귀양간 후 병이라고 휴직, 조정에서 수차 불렀으나 취임하지 않다가 임진왜란 때 두수가 다시 재상으로 기용되자 예조정랑(禮曹正郞)이 되어 아버지 두수와 함께 선조의 어가를 모시고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따라갔다. 병조판서 이양원(李陽元)의 인사 부정을 탄핵하다가 성균관전적으로 전임되었다. 이후 예조정랑, 호조정랑, 호조좌랑을 거쳐 병조정랑으로 있을 때 모친상을 당하였으나 특명으로 곧 기복(起復)해 수찬 등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지냈다. 그 뒤 이조좌랑을 거쳐 홍문관응교에 올랐으며, 당시 왜적의 만행이 극심한 중에도 몰래 숨어서 어머니 빈소에 다녀오는 효성을 보였다.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윤방」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r39101100)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여자 목록은 원문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57 · r3164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