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
왕도(王導)는 중국 진(晉)나라 시대의 정치가이다. 자는 무홍(茂弘)이다. 서진과 동진에 벼슬하였으며, 그의 활약으로 낭야왕씨는 육조 시대 남조를 대표하는 명문 귀족이 되었다. 왕람(왕상의 이복동생)의 손자이며 왕재의 아들이다. 왕열·왕첨·왕흡·왕협·왕소·왕회 등의 아버지이다. 동진의 대장군 왕돈은 사촌형이고, 서예가 왕희지는 생질에 해당한다.
출생~사망 276년 ~ 339년마지막 수정 2026. 10. 16. 오후 4:17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276년 ~ 339년
왕도(おう どう, 함녕 2년(276년) - 함강 5년 7월 18일1(339년 9월 7일))는 중국의 진나라 시대의 정치가이다. 자는 무홍(茂弘)이다. 서진 및 동진에 벼슬하였으며, 그의 활약으로 낭야왕씨는 육조 시대의 남조를 대표하는 명문 귀족이 되었다. 왕람(왕상(王祥)의 이복동생)의 손자이며 왕재의 아들이다. 왕열·왕첨·왕흡·왕협·왕소·왕회 등의 아버지이다. 동진의 대장군 왕돈은 사촌형이고, 서예가 왕희지는 생질에 해당한다.
생애
서진 시대에는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당시 사공이었던 동해왕 사마월의 참군이 되었다. 그 후 안동장군으로서 하비에 출진한 낭야왕 사마예의 사마가 되었다. 또한 중원의 동란을 예측한 왕도는 낭야왕 사마예에게 낙양에서 건강으로 옮길 것을 권하였고, 307년에 건강으로 옮겼다.2
영가의 난이 일어나 유연이 세운 한에 의해 서진은 공격을 받는다. 유연의 뒤를 이은 유총은 낙양을 함락시켰고, 회제는 붙잡혔으며, 진나라 황족의 대부분은 살해되었다. 건흥 원년(313년)에 회제가 살해되자, 장안으로 피신한 사마업이 즉위하였으나 유요에게 공격당하였고, 건흥 4년(316년)에 붙잡혀 일족과 함께 다음 해에 살해되었다. 그 무렵 강남으로 피신해 있었기에 이러한 재난을 피할 수 있었던 극소수의 황족 중 한 사람인 사마예는, 건무 원년(317년)에 왕도의 후견 아래 원제로 즉위하였다. 이것이 동진의 시작이다.
왕도는 동진의 재상으로서 고영·하순·기첨·유량·변곤·제갈회·간보·곽박 등의 인재를 원제에게 추천하였다. '백육연(百六掾)'이라 불린 이들 백여 명의 속관은 화북에서 피난 온 귀족과 강남의 호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왕도는 이해관계가 다른 이들을 자신의 휘하에 모음으로써 그들의 대립을 조정하고, 이를 통해 동진의 정권 기반을 안정시키려 하였다. 한편 사촌형 왕돈에게 병력을 주어 장강 중류 지역을 제압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원제는 정치와 군사 양면에서 낭야왕씨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게 되었고, 유외·조협 등을 중용하여 왕도의 정치력을 배제하려 하였다. 영창 원년(322년), 대장군이 되어 있던 왕돈은 원제의 이러한 움직임에 불만을 품고, 유외·조협의 타도를 명분으로 무창에서 거병하였다(왕돈의 난). 이때 수도 건강에 있던 왕도는 유외에 의해 반란자의 동족이라 하여 처형될 뻔하였으나, 주의의 중재로 무사하였다. 같은 해 원제가 붕어하고 명제가 즉위하였으며, 태녕 2년(324년)에 소준 등에 의해 왕돈의 반란은 진압되었으나, 왕도는 실각하지 않고 계속 정치를 담당하였다.
태녕 3년(325년), 명제가 붕어하고 성제가 즉위하자, 왕도는 사도로서 중서령 유량과 함께 정치를 맡게 되었다. 성제의 외척이었던 유량은 당시 왕도를 능가하는 권세를 누리고 있었는데, 북래 귀족과 강남 토착 호족 사이의 균형을 중시하는 왕도의 정치 방침을 바꾸어, 엄격한 법치주의로 황제의 권위를 강화하려 하였다. 그러나 함화 2년(327년), 소준이 유량 타도를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키는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소준의 난). 함화 4년(329년)에 도간·치감 등에 의해 반란이 진압되자, 유량은 중서령을 사직하고 지방으로 나가 진수하였으므로, 다시 왕도가 단독으로 정치를 담당하게 되었다.
후에 유량은 왕도의 시정이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여겨, 거병하여 왕도를 폐하려 하였으나, 치감의 찬동을 얻지 못하여 거병을 단념하였다. 어떤 이가 그 일을 왕도에게 전하자, 왕도는 "나와 유량은 국가를 위해 기쁨과 근심을 함께하고 있다. 그러니 만약 그가 나를 불의불충한 자로 여겨 공격해 온다면, 나는 깨끗이 관직을 그만두고 은거하겠다. 두려울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함강 5년 7월 경신(339년 9월 7일), 64세로 사망하였다. 승상이 추증되었다.
후세에 동진의 간문제가 위독했을 때, 선양을 강요하려던 환온에게 "제갈량이나 왕도와 같이 되어라"라며 황제를 보좌한 충신으로 거론하였다고 한다.
전기 자료
- 『진서』 권65 열전 제35
각주
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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