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회 사건
1982년 전북 경찰이 군산제일고 전·현직 교사 등 9명을 고문해 이적단체 '오송회'를 만든 것으로 꾸며 처벌한 사건이다. 2008년 광주고법 재심에서 전원 무죄가 선고되었다.
시작~종료 1982년 4월 19일 ~ 2011년 11월 10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12:04
상세 타임라인
개요
오송회(五松會) 사건은 1982년 11월 전라북도 경찰이 군산제일고등학교 전·현직 교사 8명과 KBS 남원방송국 간부 1명 등 9명을 이적단체 구성과 반국가단체 찬양·고무 혐의로 구속한 사건이다. 교사들이 학교 뒷산 소나무 아래에서 4·19와 5·18 희생자를 추모하고 시국을 이야기한 일이 '소나무 다섯 그루 아래 모인 모임'이라는 뜻의 '오송회'로 둔갑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는 2007년 이를 불법 장기 구금과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낸 전형적 조작 사건으로 규정했고, 2008년 광주고등법원 재심에서 전원 무죄가 선고되었다.
배경
군산제일고의 일부 교사들은 뜻이 맞는 동료끼리 책을 돌려 읽는 모임을 이어 왔다. 국어 교사이자 시인인 이광웅은 월북 시인 오장환의 시집 『병든 서울』을 손으로 베껴 둔 공책을 갖고 있었고, 동료 교사가 이를 복사해 두었다. 당시 월북 작가의 작품은 금서였다. 1982년 4월 19일 교사 몇 명은 4·19가 기념일 행사에서 빠진 것을 안타까워하며 학교 뒷산에 올라 막걸리를 놓고 간단한 추모를 했고, 5·18 희생자를 위해 묵념도 했다.
경과
복사본을 빌려 간 한 학생이 이를 버스에 두고 내렸고, 버스 안내원이 경찰에 넘겼다. 자문을 받은 한 대학교수가 '인민의 이름으로 새 나라를 세우려'는 구절 등을 들어 지식인 고정간첩이 퍼뜨린 것 같다고 하자 경찰은 내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시집을 싼 종이가 고교 국어 시험지라는 점을 단서로 몇 달을 추적해 교사들에게 닿았다.
1982년 11월 2일 경찰은 이광웅 등 교사들을 영장 없이 연행해 전주의 대공분실에 가두었다. 피해자들은 약 23일(일부 자료는 40여 일) 동안 이른바 통닭구이,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당하며 경찰이 미리 그린 '계보도'와 '역할분담표'대로 자백할 것을 강요받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5·18 이후 수배되어 이광웅의 매제 집에 잠시 숨어 지냈던 윤한봉을 북한과의 연결고리로 엮으려 했으나, 윤한봉은 1981년 이미 미국으로 망명한 상태여서 계보도를 고치기도 했다. 한때 같은 학교 교사였던 KBS 남원방송국 간부 조성용은 '수괴'로 지목되어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왔다. 11월 25일 9명이 구속되었고, 검찰은 오장환 시집과 김지하의 「오적」이 실린 일본 잡지 등을 증거로 내세웠다.
재판
피고인들은 법정에서 고문을 폭로했다. 1심은 이광웅(징역 4년), 박정석(징역 3년), 전성원(징역 1년) 3명에게 실형을, 나머지 6명에게는 선고유예를 내렸다. 석방된 교사들도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했으나, 광주고등법원 항소심은 "교사들이 공산주의 사회를 동경하며 뉘우치는 기색이 없다"며 이광웅의 형을 징역 7년으로 높이는 등 형량을 대폭 올리고, 선고유예를 받았던 6명에게도 징역 1년~2년 6개월을 선고해 모두 법정 구속했다. 1983년 12월 대법원이 이를 확정했다(일부 보도는 1983년 12월 27일 선고로 적는다). 피고인 쪽이 항소했는데 형이 더 무거워진 이례적 판결이었다. 이광웅은 1987년 사면으로 4년 8개월 만에 풀려났고, 관련자들은 1988년 사면·복권되었다.
진상 규명과 재심
- 2002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관련자들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 2007년 6월 12일: 진실화해위원회는 현실 비판 의식을 지닌 교사들을 불법 장기 구금과 고문으로 허위 자백하게 만든 조작 사건이라고 결정했다.
- 2008년 11월 25일: 광주고법 형사1부(재판장 이한주)는 재심에서 조성용 등 9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법원을 대신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좌로도 우로도 흐르지 않는 보편적 정의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사건 26년 만이었다. 이광웅은 이미 1992년 세상을 떠난 뒤였다.
- 2011년 11월 10일: 대법원 민사3부는 이광웅의 부인 등 피해자·가족 33명이 낸 국가배상 소송에서 150억여 원 배상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불법행위 뒤 29년이 지나 화폐가치가 크게 달라진 만큼 위자료의 지연이자는 사실심 변론 종결일부터 계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영향과 의의
오송회 사건은 시집 한 권과 추모 모임이 간첩단 사건으로 부풀려진 1980년대 공안 조작의 대표 사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당시 대공 기관들이 1계급 특진 같은 포상을 노려 경쟁적으로 사건을 만들고 검찰·법원이 이를 방조했다고 평가한다. 재심 재판부의 공개 사과는 법원이 과거 판결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비슷한 시기의 사건으로 부림 사건, 아람회 사건, 학림 사건 등이 있다.
이설·논쟁
- 불법 구금 기간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료가 23일, 위키백과가 40여 일로 서로 다르게 적는다.
- 연행 당시 고문을 맡았다고 피해자들이 지목한 경찰관의 실명은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으므로 여기에는 적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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