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골포 해전
1592년 음력 7월 10일 한산도 대첩 이틀 뒤 이순신의 연합 함대가 웅천 안골포에 정박한 구키 요시타카·가토 요시아키의 일본 함대를 공격한 해전.
시작 1592년 8월 16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상세 타임라인
개요
안골포 해전은 1592년 음력 7월 10일(양력 8월 16일) 경상도 웅천의 안골포(安骨浦, 지금의 창원시 진해구 안골동) 앞바다에서 벌어진 싸움이다. 한산도 대첩에서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함대를 무너뜨린 연합 함대가, 뒤따라 출진해 안골포에 머물던 구키 요시타카와 가토 요시아키의 함대를 쳤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순신의 제3차 출전에서 7월 10일 안골포의 적선을 파괴하였다고 적는다.
배경
히데요시의 명을 받은 일본 수군 장수들 가운데 와키자카가 먼저 나섰다가 한산도에서 패하였고, 구키와 가토는 대선을 포함한 40여 척(위키백과는 Hawley를 인용해 42척으로 적는다)을 이끌고 안골포에 들어와 있었다. 이들은 한산도의 패배를 듣고 넓은 바다로 나오지 않고 포구 안에 머물렀다.
경과
- 7월 9일: 한산도 싸움 뒤 가덕도 쪽으로 향하던 연합 함대는 안골포에 일본 배 40여 척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날이 저물고 역풍이 불어 거제 온천도 부근에서 밤을 보냈다.
- 7월 10일 새벽: 함대가 안골포 앞바다에 이르렀다. 포구 안에는 3층 누각이 있는 대선을 포함한 일본 배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었다. 안골포는 포구가 좁고 얕아 판옥선이 깊이 들어가기 어려웠다.
- 유인 실패와 교대 공격: 이순신은 적을 끌어내려 하였으나 일본 배들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함대는 여러 무리로 나누어 차례로 포구 안으로 들어가 총통과 화살을 쏘고 나오는 방식으로 하루 종일 공격하였다. 이억기의 함대가 포구 밖에서 이를 받쳤다.
- 결과: 대선을 비롯한 많은 일본 배가 부서지고 일본군 사상자가 많이 생겼다. 일본군은 밤사이 시체를 거두어 불태우고 남은 배를 타고 달아났다. 구키와 가토는 모두 살아남았다.
결과와 영향
한산도와 안골포의 잇따른 패배로 일본 수군의 주력은 큰 타격을 입었고, 일본은 수군의 해전을 금하고 거점 방어에 집중하게 되었다. 함대는 이후 부산 쪽을 살피다가 7월 13일 여수로 돌아왔다. 이 승리로 조선 수군은 남해 제해권을 확고히 하였고, 9월에는 일본군의 본거지를 직접 공격하는 부산포 해전에 나섰다.
이설
안골포에서 격파한 일본 배의 수는 자료에 따라 20여 척에서 40여 척까지 다르게 전한다. 위키백과는 안골포 싸움을 한산도와 같은 날의 일처럼 서술하지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장계는 7월 10일로 적는다.
참고 자료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 r260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