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원
심연원(沈連源, 1491년~1558년 6월 19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 정치인이자 외척이다. 명종조의 명신(名臣)으로, 자는 맹용(孟容), 호는 보암(保庵)이고, 본관은 청송이다. 봉군호(封君號)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시호는 충혜(忠惠)이다. 종묘의 명종 묘정에 배향됨으로써 종묘배향공신이 되었다.
출생~사망 1491년 ~ 1558년 6월 19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46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491년 ~ 1558년 6월 19일
- 자
- 맹용(孟容)
- 호
- 보암(保庵)
- 군호
-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 시호
- 충혜(忠惠)
- 출생일
- 1491년
- 출생지
- 미상
- 사망일
- 1558년 6월 19일
- 사망지
- 미상
- 국적
- 조선
- 부모
- 심순문(부) , 증 정경부인 평산 신씨(모)
- 배우자
- 정경부인 경주 김씨
- 자녀
- 1남 3녀 , 청릉부원군 심강(아들)
- 친인척
- 신영석(외조부) , 김당(장인) , 전성군 이대(사돈) , 이원빈(사위) , 윤건(사위) , 이인건(사위) , 인순왕후(손녀) , 심인겸(손자) , 심의겸(손자) , 심예겸(손자) , 심지겸(손자) , 심신겸(손자) , 심충겸(손자) , 심효겸(손자) , 심제겸(손자) , 명종(손서) , 임영로(손서) , 추계수 이벽(손서)
- 서훈
- 위사공신 2등
심연원(沈連源, 1491년~1558년 6월 19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 정치인이자 외척이다. 명종조의 명신(名臣)으로, 자는 맹용(孟容), 호는 보암(保庵)이고, 본관은 청송이다. 봉군호(封君號)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시호는 충혜(忠惠)이다. 종묘의 명종 묘정에 배향됨으로써 종묘배향공신이 되었다.
생애
학생 신분일 때인 1506년 중종 반정 직후 동생인 심달원과 함께 정국원종공신 3등에 녹선되었다.1
김안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중종 때, 1516년 생원과에 장원하였고, 1522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가 되었다. 이후 승문원 정자·예문관 검열·대교·봉교 등을 거쳐, 1526년 다시 문과 중시에 급제, 의정부 검상, 사복시 부정, 경상도 진휼 경차관, 의주목사, 군기시 정, 동부승지(同副承旨), 병조참의를 거쳐, 사간원 대사간, 경상도 관찰사, 공조참판, 사헌부 대사헌, 성균관 대사성, 1542년 특진관, 형조참판에 이르렀을 때, 그의 손녀가 경원대군(훗날의 명종)의 부인(대군부인, 부부인)이 되었다. 이후, 한성부 좌윤, 사역원 제조, 호조참판, 병조참판 등을 지냈다.
1545년(명종 즉위년) 호조판서 겸 지사, 지경연관사, , 의정부 , , 의정부 , 판사, 의정부 등을 지냈다. 1548년 에 대한 추가 책록으로, 위사공신 2등으로 청천군(靑川君)에 봉해지고, 의정부 에 올랐다. 1549년 의정부 에 오르고, 1550년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으로 진봉되었다. 1550년 좌의정 겸 감사로서 《》(中宗實錄)과 《》(仁宗實錄)의 편찬을 총괄 감독하였다. 1551년 의정부 에 올랐다. 1557년 영의정으로서 세자시강원 부(왕세자의 사부)를 겸하였다. 1558년 노환으로 영의정에서 물러나, 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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