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달원
심달원(沈達源, 1494년 ~ 1535년 11월 20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자용(子容)이다. 기묘명현에 책록되었다.
출생~사망 1494년 ~ 1535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3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494년 ~ 1535년
- 출생
- 1494년
- 사망
- 1535년 11월 20일
- 성별
- 남성
- 국적
- 조선
- 직업
- 문신
심달원(沈達源, 1494년 ~ 1535년 11월 20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자용(子容)이다. 기묘명현에 책록되었다.
가계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청송부원군(靑松府院君) 심회(沈澮)의 증손으로, 영의정에 증직된 심순문(沈順門)의 차남이고, 명종 때 영의정을 지낸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연원(沈連源)의 동생이며, 동지돈녕부사 심봉원(沈逢源), 명종 때 좌의정을 지낸 심통원(沈通源)의 형이다. 또한, 중종 때 이조참판을 지낸 윤희인(尹希仁)의 사위이다. 뒤에 7촌 아저씨이자 금천현감 심형의 양자가 되었다.1
학생 신분일 때인 1506년 중종 반정 직후 형 심연원과 함께 정국원종공신 3등에 녹선되었다.2 김안국의 문하생으로 수학하였으며 1509년 정시에 급제하였다.
관력
1517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권지승문원정자가 된 뒤 예문관검열, 홍문관 저작, 승정원주서 등을 지냈다. 1519년 홍문관부수찬, 이조좌랑으로 재직 중에는 중국어를 잘 하여 승정원의 직책을 겸직하였다. 그해 홍문관 수찬 겸 경연관 검토관을 거쳐, 부수찬(副修撰)으로 숙직하던 중, (己卯士禍)가 일어나자, (趙光祖)의 당이라 하여, 제1착으로 투옥된 후, 유배되었다. 얼마 후, 풀려나, 좌랑을 거쳐, 1522년 직강을 지냈으며, 에 능통하여, 1528년 에 가는 성절사(聖節使)를 으로 수행했다. 1523년)중종 18년) , 1528년 부정이 되고, 1531년 , 정, 정을 역임했다. 이후 판교에 임명됐다가 파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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