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무화
후주황후 심씨(後主皇后 沈氏, ? ~ ?)는 남조 진나라의 제5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인 후주 진숙보의 황후로 진나라 초대 황제 무제 진패선의 부마 망채정헌후 심군리(沈君理)의 딸이다. 본명은 심무화(沈婺華)이다.
출생 연도 미상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8
후주황후 심씨(後主皇后 沈氏, ? ~ ?)는 남조 진나라의 제5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인 후주 진숙보의 황후로 진나라 초대 황제 무제 진패선의 부마 망채정헌후 심군리(沈君理)의 딸이다. 본명은 심무화(沈婺華)이다.
생애
후주 진숙보의 황후 심무화(沈婺華)는 망채정헌후 심군리(望蔡貞憲侯 沈君理)와 회계목공주(会稽穆公主)의 딸로 진나라 초대 황제 무제 진패선(武帝 陳霸先)의 외손녀이다. 하지만 자식도 없고 색을 밝히는 남편에게 총애를 받지 못했다. 진숙보의 후궁 손희(孫姬)가 난산으로 아들을 낳고 사망하자 손희의 아들 진윤(陳胤)은 심황후(심무화)의 양자가 되어 오흥왕(吳興王)에 봉해지고 황태자(皇太子)에 책봉된다. 그러나 진숙보가 시녀(侍女) 장려화(張麗華)를 총애하게 되면서 진숙보는 장려화를 귀비(貴妃)에 책봉하고 심황후(沈皇后)의 양자 황태자 진윤(皇太子 陳胤)을 폐위시키고 장귀비(장려화)의 아들 진심(陳深)을 새 황태자(皇太子)에 책봉한다. 더 나아가 진숙보는 심황후(沈皇后)를 폐위시키고 장귀비(張貴妃)를 새 황후로 세우려고 했으나 그전에 이미 진나라가 수나라에 멸망하게 된다. 심황후(沈皇后)는 진나라가 수나라에 멸망당하자 출가하고, 장귀비(張貴妃)는 장안으로 끌려가 참수된다. 진숙보는 자신의 아버지 효선제 진욱(孝宣帝 陳頊)이 폐위시킨 진나라 3대 황제 폐제 진백종(廢帝 陳伯宗)의 외동아들 임해왕 진지택(臨海王 陳至澤)과 함께 장안으로 끌려간다.
선제 태건14년(기원582년) 정월, 진선제 진욱(陳頊)이 병사하고, 태자 진숙보가 즉위한다. 즉위초기, 시흥왕 진숙릉이 반란을 일으키고, 진숙보를 벤다. 상처를 입은 후 새 황제 진숙보는 승향각(承香閣)에서 상처를 치료한다. 당시 모든 비빈은 황후 심무화(沈婺華)까지도 각에 들어가 병을 돌볼 수 없었다. 오로지 귀비 장려화만이 각에 들어가서 모실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유태후(柳太后)가 여전히 극량전(極梁殿, 황후의 처소)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황제의 총애를 전혀 받지 못했던 심황후는 그저 구현전(求賢殿)에 따로 거주할 수밖에 없었다.
지덕2년(584년), 진숙보는 광소전앞에 임춘, 결기, 망선의 세 각을 추가한다. 삼각은 모두 높이가 수십장에 이르고, 수십칸에 이른다. 창문이나 벽, 난간등도 모두 침향목으로 만들었고, 금옥으로 장식했으며, 구슬과 비취를 박아넣었다. 바깥에는 주렴을 두르고, 안에는 보석침상과 보석휘장을 설치했다. 모든 복식과 물건은 진기한 보물들이었다. 이는 고금에 없었던 정도였다. 매번 가벼운 바람이 불어오면 향기가 몇리에 걸쳐 맡을 수 있었고, 햇볕이 내리쬐면 후정은 빛이 넘쳤다. 각의 아래에는 돌을 쌓아 산을 만들고 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만들었다. 그 사이에 기화요초를 심어서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진후주는 스스로 임춘각에 머물며, 장귀비가 결기각에 거주했다. 공귀빈(龔貴嬪), 공귀빈(孔貴嬪)의 두 귀빈이 망선각에 거주했다. 각과 각 사이에는 복도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왕미인, 이미인, 장숙원, 설숙원, 원소의, 하첩여, 강수용등의 미인들이 모두 총애를 받았다. 모두 돌아가면서 진후주의 새거소로 불려갔다.
복야 강총(江總)은 비록 재보(宰輔)이지만, 정무를 돌보지 않고 매일 도관상서 공범, 산기상시 왕차등 문사 10여명과 각에 들어가 연회를 베풀었다. 그때 서로 놀리고 존비의 서열은 전혀 없었다. 이를 '압객(狎客)'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궁인 원대사(袁大舍)등은 글을 잘 알았고, 시가를 쓸 수 있었다. 진후주가 '여학사'로 칭하며 매번 연회를 열면여러 총희비빈, 여학사 및 여러 압객이 모여들었다. 술잔이 날아가며 취하면 시사를 지어서 서로 화답했다. 후주는 사부를 잘 지었다. 그리고 그중 특별히 잘 지은 시사를 골라서 곡을 붙였다. 자색이 아름다운 궁녀 천여명을 골라서, 연습하고 노래부르게 했다. 후세에 전해지는 곡으로는 <옥수후정화>, <임춘락>등이 있다. 대부분은 장려화, 공귀빈의 자색을 칭찬하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두 구절은 "망월야야만(望月夜夜滿), 경수조조신(瓊樹朝朝新)". 임금과 신하가 매일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아침부터 밤까지 보냈고 이것이 일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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