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흠
신흠(申欽, 1566년 ∼ 1628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자는 경숙(敬叔), 호는 현헌(玄軒)·상촌(象村)·현옹(玄翁)·방옹(放翁), 시호는 문정(文貞), 본관은 평산이다.
출생~사망 1566년 ~ 1628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54
신흠(申欽, 1566년 ∼ 1628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자는 경숙(敬叔), 호는 현헌(玄軒)·상촌(象村)·현옹(玄翁)·방옹(放翁), 시호는 문정(文貞), 본관은 평산이다.
생애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학유ᆞ감찰ᆞ병조좌랑, 봉교, 양재도찰방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에 삼도 순변사 신립을 따라 조령 전투에 참가했으나, 신립이 패하자 강화에 들어갔다가 체찰사 정철의 종사관이 되었다. 이후 도승지, 병조참판, 부제학, 대사성을 거쳐 한때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동지성균관사, 예문관 대제학을 지내고 1608년, 한성부판윤, 병조판서, 예조판서를 거쳐 경기도관찰사에 이어 지의금부사와 대사헌을 지내다 숭정대부가 되고 동지경연사가 되었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사헌으로서 세자 책봉 주청사가 되었고 선조로부터 영창대군을 보필하라고 부탁 받은 7대신 중의 한 사람으로, 1608년(광해군 즉위) 유영경의 옥사 직후 정운원종공신 1등(定運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1613년 계축옥사 때에 유배되었다.
1614년(광해군 6년) 8월 27일 위성원종공신 1등(衛聖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인조반정 후 다시 등용되어 이조판서와 대제학을 거쳐 우의정을 지냈으며(1623.7.29-1626.9.24), 정묘호란 때 좌의정(1627.1.18-9.4)으로서 세자를 모시고 전주에 피난갔다가 돌아와서 영의정이 되었다(1627.9.4-1628.6.29). 1628년(인조 6) 유효립에 난 진압을 도운 공로로 영사원종공신 1등(寧社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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