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개
신개(申槩, 1374년(공민왕 23년) ∼ 1446년(세종 28년))는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자격(子格), 호는 인재(寅齋)이다.
출생~사망 1374년 ~ 1446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57
신개(申槩, 1374년(공민왕 23년) ∼ 1446년(세종 28년))는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자격(子格), 호는 인재(寅齋)이다.
문과 급제 후 공조판서, 형조참판, 예문관대제학 등을 거쳐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냈다. 고려사 편찬에 참여하였고 의정부 서사제도(議政府署事制度)의 폐지를 주장하여 실현시켰다.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문희공파의 파조이다.
신상의 증조부이며 신립의 5대조이다.
생애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자격(子格), 호는 인재(寅齋)로 할아버지는 봉익대부(奉翊大夫) 전리판서(典理判書) 수문전대제학(修文殿大提學) (고려조 종2품) 신집이며, 아버지는 중정대부 종부시 영(宗簿寺令)(고려조 종3품) 신안(申晏)이고, 어머니는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임세정(任世正)의 딸이다.
신개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글을 잘 지었다. 공양왕 2년(1390) 사마시에 합격하고, 조선 건국 후 태조2년(1393)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다. 그 뒤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사헌부감찰·습유·좌정언·형조좌랑·호조좌랑·충청도도사·사간원헌납·이조정랑·의정부사인·예문관제학·판승문원사 등을 지냈다. 태종 13년(1413) 우사간대부로 춘추관편수관과 지제교를 겸하였다. 태종 17년(1417년) 공조참판을 거쳐 그해 공조판서가 되어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세종 즉위 후 전라도·경상도·황해도의 관찰사를 거쳐 형조 참판 · 진주 목사 · 우군총제 · 좌군총제 · 예문관대제학, 전라도 , 중군도총제, 등을 역임하고, 세종 15년(1433) 야인이 자주 변경을 침입하여 큰 피해를 입히자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벌을 강력히 주장하여 야인들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세종 16년 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에 다녀왔다. 뒤이어 형조 판서를 거쳐 우참찬이 되어 지춘추관사를 겸임하면서 《고려사(高麗史)》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세종 18년(1438) 찬성으로 승진되어 세자 이사(世子貳師) · 집현전 대제학을 겸임하였고, 임금이 의논할 일이 있으면 매번 내전으로 불러 의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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