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섭
사섭(士燮, 137년 ~ 226년 음력 11월) 또는 시 니엡(베트남어: Sĩ Nhiếp)은 중국 후한 말의 군웅으로, 자는 위언(威彦)이며 창오군 광신현(廣信縣) 사람이다. 중원(中原)이 혼란해지자 변방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였다. 220년 후한이 멸망하자 손권에게 칭신하였다. 일남태수 사사(士賜)의 아들로, 그의 집안은 왕망이 찬탈한 이후 혼란기를 피해 교주로 이주하였다.
출생~사망 137년 ~ 226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2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37년 ~ 226년
- 출생
- 137년, 창오군 광신현
- 사망
- 226년 음력 11월
- 성별
- 남성
- 국적
- 후한
- 경력
- 일남태수
- 직업
- 군웅
- 위치
- 23.7500, 111.2500
사섭(士燮, 137년 ~ 226년 음력 11월1) 또는 시 니엡(베트남어: Sĩ Nhiếp)은 중국 후한 말의 군웅으로, 자는 위언(威彦)이며 창오군 광신현(廣信縣) 사람이다. 중원(中原)이 혼란해지자 변방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였다. 220년 후한이 멸망하자 손권에게 칭신하였다.
일남태수 사사(士賜)의 아들로, 그의 집안은 왕망이 찬탈한 이후 혼란기를 피해 교주로 이주하였다.
생애
사섭의 선조는 본래 문양(汶陽) 사람인데, 6세조2 가 왕망의 난을 피하여 교주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였다.
젊었을 때 사섭은 낙양에서 지식인들과 교류를 갖고, 영천의 유도(劉陶)에게서 학문을 배워 《춘추좌씨전》에 주석을 달아 《춘추경》(春秋經)을 지었다.3 그의 지식과 교양이 상당히 뛰어나, 후에 사섭에게 몸을 의지했던 원휘는 순욱에게 "사섭은 학식이 풍부하고 정치에 정통하다"라고 하였다.
부친이 죽고 상을 치른 후, 무재(茂才)로 천거되어 무양령(巫陽令)을 지내다가 교지태수(交趾太守)가 되었다.
건안 원년(196년), 교주자사 주부(朱符)가 이민족들에게 살해당하였다. 사섭은 조정에 표를 올려 동생 사일은 합포태수, 사유는 구진태수, 사무는 남해태수를 맡도록 하여 교주 전체를 차지하였다. 이후 교지는 사섭의 통치로 크게 번성하게 된다. 당시 사섭의 권세가 어떠하였는지가 《삼국지》 오서(吳書) 사섭전(士燮傳)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사섭」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r38439366)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여자 목록은 원문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2 · r23353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