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류
비류(沸流, ?~기원전 18년)는 우태(優台)의 장남 혹은 고구려(高句麗)의 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의 차남으로, 온조왕(溫祚王)의 형이다. 미추홀국(彌鄒忽國)의 초대 왕이기도 하다.
출생 기원전 45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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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沸流, ?~기원전 18년)는 우태(優台)의 장남 혹은 고구려(高句麗)의 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의 차남으로, 온조왕(溫祚王)의 형이다. 미추홀국(彌鄒忽國)의 초대 왕이기도 하다.
생애
《삼국사기》 〈백제본기〉 서두의 두 설화 중 온조설에 의하면, 비류는 온조와 함께 고구려의 남쪽 지방으로 도망쳤다. 비류는 해변에 살기를 원하였으나 10명의 신하가 간언하기를, “생각건대 이 하남의 땅은 북은 한수를 띠고, 동은 고악을 의지하였으며, 남은 옥택을 바라보고, 서로는 대해를 격하였으니, 그 천험지리가 얻기 어려운 지세라 여기에 도읍을 이루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자, 비류는 듣지 않고 미추홀을 도읍으로 나라를 세웠으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백성들이 살지 못하여 동생이 세운 나라로 이주하자 자결하였다.1
백제의 시조가 비류라는 시조 비류설에 따르면, 어머니 소서노는 졸본 사람으로 우태에게 시집와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을 낳았다. 우태의 사후에 주몽이 졸본에 도읍하고 고구려를 세운 뒤 소서노를 맞아 왕비로 삼고 비류와 온조를 양자로 삼았다. 이후 부여에서 예씨(禮氏)의 아들 유리가 찾아와 태자가 되자, 비류와 온조가 졸본부여를 떠나 남쪽으로 가 미추홀에서 살았다고 한다.
백제 시조에 대해서는 그 외에 시조 온조설과 이 있으며, 현재는 이 학계에서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이 에 정착하여 왕의 둘째 딸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형은 비류로, 동생은 로 이름 지어졌다. 이후 이 를 건국하고, 비류와 는 왕위에 오르는 가장 유력한 순위에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비류와 를 얻기 이전에 과 의 예씨 사이에서 태어난 가 에 찾아오자 이 반겼다. 게다가 은 첫째 아들인 를 로 임명하자, 비류와 형제는 후일이 두려워 남쪽으로 내려가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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