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법주사(法住寺)는 대한민국의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에 있는 절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이다.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조성 553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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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지도에서 같은 시대 보기 →법주사(法住寺)는 대한민국의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에 있는 절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이다.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역사
공민왕도 세조임금도 찾아온 명찰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년)에 의신조사가 창건하였다.1 의신조사(義信祖師)가 천축(天竺, 印度)에 갔다가 백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절을 지을 터를 찾아다니는 길에 흰 노새가 지금의 법주사 터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추고 울었다고 한다. 의신조사가 노새의 기이한 행적에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름다운 경치에 비범한 기운도 느껴져서 그곳에 절을 지은 후 절 이름을 인도에서 가져온 경전 즉, 부처님의 법이 머물렀다는 뜻에서 법주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뛰어난 고승대덕들이 차례로 법주사에 주석하며 수차례에 걸쳐 중창이 이루어졌다. 문종의 다섯째 아들인 도생승통은 법주사의 주지를 지냈으며, 원종 때 미수대사는 왕명으로 각종 경전 92권을 찬술하기도 했다. 1363년(공민왕 12년)에는 공민왕이 직접 법주사에 와서 양산 통도사에 모셔진 부처님의 사리 1과를 법주사에 봉안하도록 했다. 이때 사리를 모셨던 사리탑이 아직도 법주사 능인전 뒤쪽에 남아있다.
법주사는 31본산(本山)의 하나로 고려 숙종이 그 아우 의천을 위하여 인왕경회(仁王經會)를 베풀었을 때 모인 승려가 3만 명이나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 규모가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세조 임금도 법주사에 들러 복천암에 머물던 신미대사를 도와 절을 크게 중창했다. 조선 중기에는 60여 동의 전각과 70여 개의 암자를 지닌 대찰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 이후 1605년(선조 38년)부터 1626년(인조 4년)에 걸쳐 사명대사와 벽암각성 스님이 팔상전 등 전각을 중건했다.
1939년에 당시 주지였던 장석상 스님이 의뢰해서 당대 최고의 조각가였던 김복진이 법주사 미륵불상 조성을 추진했으나 한때 중단되었다가 1964년 완공했다.
문화재
법주사는 대한민국의 사적 제50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유일한 고식(古式) 목탑인 팔상전(국보 제55호)을 비롯, 다양한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만 3점이고, 보물은 13점, 충북 유형문화재가 20점, 문화재자료 1점 등이다. 이외에도 법주사 자체가 사적 제503호로 지정되었으며, 법주사 일원은 명승 제61호이다. 또한 천연기념물도 2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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