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윤화
백윤화(白允和, 일본식 이름: 白川允和시라카와 인와, 1893년 5월 11일 ~ 1956년 10월 17일)는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친일파 법조인이다. 본관은 수원이다.
출생~사망 1893년 5월 11일 ~ 1956년 10월 17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2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893년 5월 11일 ~ 1956년 10월 17일
- 본명
- 백윤화
- 로마자 표기
- Baek Yun-hwa
- 출생
- 1893년 5월 11일
- 사망
- 1956년 10월 17일
- 국적
- 대한민국
- 직업
- 법조인
백윤화(白允和, 일본식 이름: 白川允和시라카와 인와, 1893년 5월 11일 ~ 1956년 10월 17일)는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친일파 법조인이다. 본관은 수원이다.
생애
일제강점기 활동
1893년 5월 11일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백운영(白運永)1은 한성부에서 가장 큰 부인용품 상점인 '백상회'를 운영하던 재력가였다. 1910년 6월 보성중학교를 거쳐 1915년 3월 경성전수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5월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 서기 겸 통역생이 되면서 법조계에 들어섰다. 1917년 3월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 서기과 서기 겸 통역생으로 옮겨 근무했고, 이듬해 1918년에는 고등관 8등의 부산지방법원 통영지청 판사로 고속 승진하여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총독부 판사로 근무했다.
1919년 3월에는 경성지방법원 수원지청 판사, 1921년 7월 경성지방법원 판사로 옮겼다. 경성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하던 1922년 12월, 사이토 총독을 암살할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왔다가 백윤화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독립운동 군자금을 요구한 의열단원 윤병구, 유석현, 김지섭 등 독립운동가들을 일본 경찰에 밀고하여 체포하도록 했다.2
1927년 8월, 경성 보성고등보통학교 학생으로서 교장 배척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된 박종운, 박일봉 등의 재판에 판사로 참여했으며 같은 달 비밀결사 창의단 단원 김응선 등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을 때 이들의 재판에 판사로 참여했다. 1928년 11월 쇼와 천황 즉위기념 대례기념장을 받았으며, 1929년 9월에는 정6위에 서위되었고, 11월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1930년 2월에는 판사로 발령받았다.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백윤화」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r38469208)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여자 목록은 원문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2 · r26876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