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협회
1896년 7월 서재필·이상재·윤치호 등이 창립한 개화 단체. 독립문 건립과 토론회, 만민공동회를 통해 자주 국권·자유 민권·의회 설립 운동을 벌였으나 1898년 12월 강제 해산되었다.
시작~종료 1896년 7월 2일 ~ 1898년 12월 25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상세 타임라인
개요
독립협회는 1896년 7월 2일 창립되어 1898년 12월 해산될 때까지 활동한 개화·계몽 단체이자 정치 단체이다. 처음에는 독립문·독립공원 건립을 위한 관민 합동 단체로 출발했으나, 점차 토론회와 민중 집회인 만민공동회를 통해 열강의 이권 침탈 반대, 국민의 자유·권리 보장, 의회 설립을 요구하는 근대적 정치 운동으로 발전했다.
배경
갑신정변 실패 후 미국으로 망명했던 서재필은 1895년 말 귀국해 정부의 지원을 받아 1896년 4월 7일 한글 신문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아관파천 이후 열강의 이권 침탈이 심해지는 가운데, 정부 관료와 개화 지식인들은 조선이 독립국임을 안팎에 보여 줄 상징물 건립을 추진했다.
창립과 초기 활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독립협회는 1896년 7월 2일 외부(外部)에서 창립 총회를 열고 전문 21조의 규칙을 제정했다. 고문 서재필, 회장 안경수, 위원장 이완용 등이 선출되었고, 초기 임원진은 이완용·민상호·이채연·현흥택·이상재 등 이른바 정동파 관료가 중심이었다.
- 1896년 11월 21일, 청 사신을 맞던 영은문 자리 부근에서 독립문 정초식을 열었다. 독립문은 1897년 11월 완공되었다.
- 모화관을 고쳐 독립관으로 삼고, 1896년 11월 30일 기관지 『대조선독립협회회보』를 발간했다.
- 1897년 8월 29일부터 매주 독립관에서 토론회를 열어 회원과 민중에게 근대적 정치·사회 의식을 퍼뜨렸다.
만민공동회와 정치 운동
1898년 들어 독립협회는 구국 정치 운동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2월 21일 이상재 등은 외국의 내정 간섭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고, 러시아가 부산 절영도 조차를 요구하자 2월 27일 독립관에서 반대 성토 대회를 열었다.
1898년 3월 10일 서울 종로에서 1만여 명이 모인 최초의 만민공동회가 열려 러시아의 재정 고문과 군사 교관 철수를 요구했다. 결국 정부는 3월 19일 러시아 고문과 교관을 해고했고, 한러은행도 문을 닫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를 민중의 힘으로 자주 국권을 지킨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한다.
독립협회는 이어 의회 설립을 요구하며 친러 수구파 정부의 퇴진을 압박해, 10월 12일 박정양·민영환 중심의 개혁파 정부를 세우는 데 성공했다. 10월 28일부터 11월 2일까지 종로에서 정부 대신들도 참석한 관민공동회가 열렸고, 외국에 의존하지 말 것, 외국과의 이권 계약은 대신과 중추원 의장이 합동 날인할 것, 재정은 탁지부가 전관할 것 등을 담은 「헌의 6조」가 결의되어 고종의 재가를 받았다. 11월 2일에는 중추원 관제가 개정되어 의관의 절반을 독립협회가 선출하도록 했다. 이는 한국 최초의 의회 설립 시도로 평가된다.
해산
그러나 수구파는 독립협회가 고종을 폐하고 박정양을 대통령으로 하는 공화정을 세우려 한다는 익명서를 퍼뜨렸다(조병식 등의 무고). 고종은 11월 4일 밤 독립협회 해산령을 내리고 이상재 등 17명의 지도자를 체포했다. 중추원 의관 선거는 무산되었다.
이에 서울 시민들은 11월 5일부터 경무청 앞 등에서 철야 시위를 벌이며 지도자 석방과 독립협회 복설을 요구했다. 정부는 황국협회와 보부상을 동원해 시위대를 습격했지만 만민공동회는 계속되었고, 고종은 일시 독립협회 복설을 허락했다. 그러나 12월 들어 박영효 소환 문제 등으로 급진파가 대정부 공세를 강화하자, 고종은 군대를 동원해 만민공동회를 해산시키고 12월 25일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해산을 명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이때 430여 명의 지도자가 체포되었다.
의의
독립협회는 민중 집회를 통해 정치에 참여하는 근대적 정치 문화를 처음으로 열었고,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 사상을 퍼뜨렸다. 해산 후 회원들은 애국 계몽 운동과 신민회, 그리고 이후 독립운동의 여러 갈래로 이어졌다. 다만 지도부 일부의 친미·친일적 성향과, 의병이나 농민층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한계로 지적된다.
관련 인물
- 서재필(1864~1951): 갑신정변 뒤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귀국해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1898년 정부의 압력으로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 윤치호(1865~1945): 독립협회 회장을 지내며 만민공동회를 이끌었다.
- 이상재(1850~1927): 독립협회의 핵심 지도자. 뒤에 YMCA 운동을 이끌고 신간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 이승만(1875~1965): 배재학당 출신 청년 회원으로 만민공동회에서 활약하다 투옥되었다.
참고 자료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 r339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