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원왕
고국원왕(故國原王, ? ~ 371년 11월 17일, 재위: 331년 ~ 371년)은 고구려의 제16대 국왕이다. 국강상왕(國罡上王)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사유(斯由) 또는 쇠(釗)이며 미천왕의 아들이다. 백제 근초고왕과의 전투중에 전사하였다.
출생~사망 연도 미상 ~ 371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8
고국원왕(故國原王, ? ~ 371년 11월 17일(음력 10월 23일, 율리우스력 11월 16일), 재위: 331년 ~ 371년)은 고구려의 제16대 국왕이다. 국강상왕(國罡上王)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사유(斯由) 또는 쇠(釗)이며 미천왕의 아들이다. 백제 근초고왕과의 전투중에 전사하였다.
생애
미천왕(美川王)과 왕비 주씨(周氏)의 아들로, 언제 태어났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314년(미천왕 14년) 봄 정월에 태자에 책봉되었고, 331년 음력 2월에 미천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334년에 평양성을 증축하였고, 335년에는 신성(新城)을 쌓았으며, 342년에는 환도성과 국내성을 증축하는 등 변경의 방비를 강화하였다. 또한 전연(前燕)을 견제하기 위해 336년과 343년에 걸쳐 동진(東晉)에 사신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전연과의 전쟁
오호 십육국 시대 선비족 모용부의 수장 모용외가 333년에 사망하자, 모용외의 아들 모용황이 모용부의 대인(大人)이 되었다. 모용황의 아우인 모용인(慕容仁)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자, 고국원왕은 336년에 망명해온 곽충(郭充)과 동수(佟壽)를 맞아들였다. 338년에 전연과 후조(後趙)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자, 후조와 내통하였던 봉추(封抽)·송황(宋晃) 등이 망명을 요청해 그들을 받아들였다.1
339년에 전연(前燕)이 쳐들어와 신성(新城)에 이르렀다. 고국원왕이 동맹을 청하자 전연은 물러갔다. 이때 맺은 동맹 관계에 따라, 340년에 전연에 조회 (정치)하기도 하였다. 342년 겨울에 모용황은 용성(龍城)으로 천도한 후,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로 쳐들어왔다. 모용황은 왕우가 이끄는 1만 5천의 소수 군대를 평탄한 북쪽 길로 보내고, 자신은 한수와 함께 5만 대군을 이끌고 험난한 남쪽 길을 택해 공격하는, 기만전술을 썼다. 하지만 이를 알아채지 못한 고국원왕은 북쪽으로 왕제 무(武)가 이끄는 정병 5만을 파견하고, 자신은 소수의 군대로 남쪽을 지켰다. 결국, 남쪽 전투에서 크게 패한 고구려군 중에서 장군 아불화도가(阿佛和度加)가 전사하고, 환도성()이 함락되었으며, 고국원왕은 단신으로 단웅곡(斷熊谷)으로 피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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