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Anton
Case Anton (독일어: Unternehmen Anton)은 1942년 11월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가 비시 프랑스에 대해 수행한 군사 점령이다.
시작~종료 1942년 11월 10일 ~ 1942년 11월 27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8:08
문서 정보
- 시작 ~ 종료
- 1942년 11월 10일 ~ 1942년 11월 27일
- Date
- 1942년 11월 10일–27일 (2주 3일)
- Location
- 프랑스
- Result
- 독일과 이탈리아의 승리 Zone libre의 군사 점령 독일과 이탈리아 사이의 Zone libre 분할 프랑스 함대 나포 실패
Case Anton (독일어: Unternehmen Anton)은 1942년 11월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가 비시 프랑스에 대해 수행한 군사 점령이다. 이는 명목상 독립 국가로서의 비시 정권의 종말과 그 군대(극도로 제한된 휴전군)의 해산을 의미했으나, 비시 정권은 점령된 프랑스 내에서 괴뢰 정부로서 존속을 이어갔다. 비시 무장 세력의 해산 직전 마지막 행동 중 하나는 추축국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툴롱 프랑스 함대 자침이었다.
배경
비시 프랑스 점령을 위한 독일의 계획은 1940년 12월 공격 작전(Operation Attila)이라는 암호명으로 입안되었으며, 곧 코르시카 점령 계획인 Operation Camellia와 함께 고려되기 시작했다.1 Operation Anton은 원래의 Operation Attila를 갱신하여 서로 다른 국방군 부대들을 포함시키고 이탈리아군의 참여를 추가했다.
아돌프 히틀러에게 명목상 독립된 프랑스의 존재를 허용한 주된 근거는, 독일의 해군 우위가 없는 상황에서 프랑스 식민지가 연합국에 사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 수단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1942년 11월 8일의 연합군의 북아프리카 프랑스령 상륙으로 이러한 근거는 사라졌는데, 특히 비시 정부가 프랑스 식민지 당국이 연합군 점령에 굴복하는 것을 막을 정치적 의지나 실질적 수단이 없다는 사실이 곧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히틀러는 프랑스 지중해 연안에 노출된 측면을 감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피에르 라발 프랑스 총리와의 마지막 대화 후, 히틀러는 11월 11일 코르시카 점령을, 다음 날 비시 프랑스 점령을 명령했다.
작전 경과
1942년 11월 10일 저녁까지 국방군과 이탈리아 왕립군은 Case Anton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제1군은 프랑스–스페인 국경과 나란히 대서양 연안에서 진격했고, 제7군은 요하네스 블라스코위츠 장군의 지휘 아래 프랑스 중부에서 비시와 툴롱 방향으로 진격했다. 이탈리아 제4군은 프랑스 리비에라를 점령했고, 이탈리아 사단 하나가 코르시카에 상륙했다. 11월 11일 저녁까지 독일 전차들은 지중해 연안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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