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개조 반박문
95개조 반박문(95 Thesen)은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회의 정문에 내붙인 95개조로 구성된 교황에 대한 반박문을 말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신축 비용 등을 확보하기 위해 로마 가톨릭 교황이 면벌부 발행을 남발하자 당시 작센 선제후국 비텐베르크 대학의 도덕신학 교수 마르틴 루터가 이에 항의하여 붙인 것이다. 종교개혁의 신호탄이자 개신교의 시발점으로 여겨진다. 루터는 여기서 성직자의 대사와 면죄부를 판매하는 행위를 지적했다. 루터는 죄가 용서받기 위해 그리스도가 요구하는 회개는 단순히 외적인 죄의 고백이 아니라, 영
제작 1517년 10월 31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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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7년 10월 31일
95개조 반박문(95 Thesen)은1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회의 정문에 내붙인 95개조로 구성된 교황에 대한 반박문을 말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신축 비용 등을 확보하기 위해 로마 가톨릭 교황이 면벌부 발행을 남발하자 당시 작센 선제후국 비텐베르크 대학의 도덕신학 교수 마르틴 루터가 이에 항의하여 붙인 것이다. 종교개혁의 신호탄이자 개신교의 시발점으로 여겨진다.
루터는 여기서 성직자의 대사와 면죄부를 판매하는 행위를 지적했다. 루터는 죄가 용서받기 위해 그리스도가 요구하는 회개는 단순히 외적인 죄의 고백이 아니라, 영적인 회개를 수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톨릭 사제가 집행하는 대사와 면죄부가 진정한 영적 회개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루터는 면죄부로 인해 신자들이 긍휼과 자선 등의 행동을 하는 대신 면죄부를 구입하는 것이 더 영적인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루터는 면죄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교황 레오 10세의 입장과 일치한다고 말하나, 본문에서는 14세기 교황 칙서를 논박하고 있다. 해당 칙서에서는 과거 성인들의 선행이 죄책을 면제해줄 수 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루터는 본문에서 토론에서 논의되어야 할 명제들을 중심으로 틀을 잡았지만, 나중에 면죄부의 가치 대해 여러 논쟁을 거치며 자신의 견해를 명확히 했다.
배경
면죄부는 11세기 말부터 판매되기 시작했고 르네상스 시대에 극에 달했다. 교황 레오 10세는 베드로 대성당을 짓기 위해 1506년 일괄 면죄부의 대량 세일에 나섰다2 1500년대 초 마인츠 대주교 알브레히트는 그의 초입세를 납부하기 위해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렸다. 알브레히트의 면죄부 판매원인 도미니크회의 수도사 테첼을 시켜서 면죄부를 팔게했다. 테첼은 "단순히 면죄부를 산 사람만의 죄가 아니라 그의 부모 친지의 영혼조차 면죄부를 산 돈이 금고에 떨어져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옥으로부터 튀어나온다"는 식의 과대선전을 하면서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렸다. 테첼과 같은 면죄부 판매원들은 "면죄부를 사는 순간 그만한 교회의 영적인 은혜를 얻기 때문에 자기 죄를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설교를 하였고 "이미 죽은 사람을 위해서도 면죄부를 살 수 있으며 이때도 고해성사나 회개의 필요가 없이 오직 돈만을 가지고 오면 연옥의 영혼이 구제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3 이리하여 종교개혁 직전의 당시에 면죄부가 엄청난 숫자로 팔렸으며 이는 당시의 교인들의 신앙심과 미신적인 요소에 대해 측정을 가능하게 하는 지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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