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녹스
헨리 녹스(Henry Knox, 1750년 7월 25일 - 1806년 10월 25일)은 미합중국의 군인, 정치가. 초대 미국 육군 장관을 지냈다.
출생~사망 1750년 7월 25일 ~ 1806년 10월 25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7
헨리 녹스(Henry Knox, 1750년 7월 25일 - 1806년 10월 25일)은 미합중국의 군인, 정치가. 초대 미국 육군 장관을 지냈다.
생애
초기 경력
1750년, 녹스빌은 매사추세츠 만 식민지의 보스턴에서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 이민자 윌리엄 녹스(William Knox, 1712-1762)와 매어리 캠벨 (Mary Cambell, 1725 -??)의 아들로 태어났다.1 조선업에 종사했던 그의 아버지는 경제적 파산으로 인해, 가족을 떠나 신트외스타티위스섬으로 갔으며, 1759년 그곳에서 원인 모를 병으로 사망했다.2
헨리는 보스턴 라틴 스쿨에 입학하여, 그곳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 산수, 그리고 유럽의 역사를 배웠다.3 그는 장남이었기 때문에 부친이 사망하자 녹스는 12살의 나이로 1762년에 초등교육을 마치고 어머니가 운영하는 서점에서 사무 보조원으로 일했다. 그 가게의 주인이었던 니콜라스 보우스는 녹스를 위해 대리부 역할을 해주었다.4 그러나, 녹스는 보스턴 거리의 갱들과 관계를 맺고, 주변에서 가장 거친 싸움꾼이 되었다.3 그때 녹스는 보스턴에서 자신의 손으로 다른 서점 ‘런던 북스토어’를 개업했다. 녹스는 군사 화제, 특히 포술에 관심을 가지고 그 지식의 대부분을 독학으로 배웠다.
1774년 6월 16일, 녹스는 보스턴의 왕당파의 딸 루시 플러커(Lucy Flucker, 1756-1824)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녹스의 병역 때문에 별거를 할 수 밖에 없었지만, 많은 편지를 교환하고, 사별할 때까지 다정한 부부였다. 1775년에 미국 독립 전쟁이 발발하면서 두 사람은 전장이 된 보스턴에서 벗어났다. 아내 루시는 독립 전쟁 기간 동안 노숙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미국 독립 전쟁
녹스는 영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자유의 아들들을 지지하고 영국군의 보스턴 학살 사건을 규탄했다. 1772년, 녹스는 보스턴 그레네이더 군단에 지원병으로 입대했고, 1775년에 알테마즈 워드 장군 휘하에서 벙커 힐 전투에 참여했다. 그때 녹스는 정찰군에 소속되어 조지 워싱턴 장군과 알게 되었다. 녹스는 워싱턴에 감명을 받았으며, 두 사람은 좋은 친구가 되었다.
1776년 3월에 대륙군이 뉴욕 식민지의 타이컨더로가 요새를 점령하면서, 녹스는 타이컨더로가 요새에서 획득한 대포를 보스턴 포위전에서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워싱턴은 녹스를 대령으로 임명하고 대포를 타이컨더로가에서 보스턴까지 수송할 것을 명령했다. 녹스와 그 부대는 타이컨더로가로 가서 거기에서 서안에서 남쪽 올버니까지 소 썰매의 길을 조성했다. 그리고 올버니에서 스프링필드, 우스터를 거쳐 보스턴까지 대포를 날랐다. 수송 작업은 1775년 12월 5일에 시작되었다. 총 59문의 대포와 박격포를 300마일의 여정을 56일에 걸쳐 옮겨져 1776년 1월 24일에 모든 작업을 완료했다. 그 대포는 영국군을 내려다보는 도체스터 고지에 배치되었다. 그 결과, 영국군은 1776년 3월 17일에 에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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