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안쿄
헤이안쿄(일본어: 平安京 ) 또는 헤이안조(일본어: 平安城 )는 도쿄 이전 일본의 수도이다. 현재 교토시 몇몇 예전 이름 가운데 하나다. 794년부터 1869년까지 약 천 년간 일본국의 수도였다. 간무 천황은 와케노 기요마로의 조언으로 나가오카쿄를 대체할 수도를 야마시로국의 오타기(愛宕)·카도노(葛野) 양 군에 걸쳐 세웠다. 당나라 수도 장안을 모방하였고, 공사는 793년에 시작하여 794년에 천도하였다. 북부 중앙에 미야기궁과 헤이안궁을 세웠다. 미나모토 씨가 권력을 차지해 가마쿠라 막부를 세우고 후쿠하라로 천도하는 1185년까지
조성~소멸 794년 11월 22일 ~ 1869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6
헤이안쿄(일본어: 平安京 (へいあんきょう)) 또는 헤이안조(일본어: 平安城 (へいあんじょう))는 도쿄 이전 일본의 수도이다.1 현재 교토시 몇몇 예전 이름 가운데 하나다. 794년부터 1869년까지 약 천 년간 일본국의 수도였다.
간무 천황은 와케노 기요마로의 조언으로 나가오카쿄를 대체할 수도를 야마시로국의 오타기(愛宕)·카도노(葛野) 양 군에 걸쳐 세웠다. 당나라 수도 장안을 모방하였고,2 공사는 793년에 시작하여 794년에 천도하였다. 북부 중앙에 미야기궁과 헤이안궁을 세웠다. 미나모토 씨가 권력을 차지해 가마쿠라 막부를 세우고 후쿠하라로 천도하는 1185년까지 정치적 중심지였다.3 794년부터 1185년까지를 일본 역사에서 헤이안 시대로 부른다.
비록 정치적 힘은 막부가 차지하였지만 헤이안쿄는 황궁과 천황이 있는 곳으로써 공식적인 수도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이후 메이지 유신(1868년)시대에 천황의 거처는 도쿄로 옮겼다.
개요
새로운 도읍지 선정에 은밀히 들어간 간무 천황은 792년(엔랴쿠 11년) 1월 그리고 5월 사냥을 포기하고 후보지인 야마시로국의 오타기와 카도노를 찾았다. 또 다음해인 793년(엔랴쿠 12년)에는 대납언인 후지와라노 오구로마로와 좌대변인 키노코사미 등도 파견해 지역을 확인하도록 하였다. 마침내 이곳이 새로운 도읍지의 건설지로 결정되어 신도시 건설 계획, 천도 계획이 시행되었고 동시에 나가오카쿄의 철거가 시작되었다.
당시 헤이안쿄는 야마시로국의 가도노군과 에 지었다. 이곳은 현재 중심부에 해당한다. 헤이안쿄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동서로 4.5km, 남북으로 5.2km에 이르렀다. 도시 배치는 를 본땄으며, 북쪽에 황궁인 , 혹은 헤이안궁이 있었다. 황궁 아래로는 주요 도로인 스자쿠 오지(주작대로)가 뻗어있었다. 헤이안쿄 동쪽에 , 서쪽에는 가 있다.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헤이안쿄」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r38883211)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여자 목록은 원문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6 · r46837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