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하우젠 전투는 1525년 5월 14일과 15일에 벌어졌다. 이 전투는 독일 농민 전쟁에서 중요한 전투였으며 튀링겐에서 전쟁의 마지막 국면이었다. 헤센 방백 헤센의 필리프 1세와 작센공 게오르크의 연합군은 슈바르츠부르크 백작령의 프랑켄하우젠 인근에서 정신적 지도자 토마스 뮌처 휘하의 농민군을 격파했다.
준비
1525년 4월 29일, 프랑켄하우젠과 그 주변의 충돌이 공개적인 반란으로 번졌다.1 시민 상당수가 봉기에 가담하여 시청을 점거하고 슈바르츠부르크 백작 가문의 성을 습격했다. 이후 며칠 동안 도시 주변에는 점점 많은 봉기군이 모였고, 5월 11일 뮌처가 뮐하우젠에서 300명의 전사를 이끌고 도착했을 때에는 주변 튀링겐 및 작센 영지에서 온 수천 명의 농민이 들판과 목초지에 야영하고 있었다. 헤센의 필리프와 그의 장인인 작센공 게오르크는 원래 뮐하우젠을 전략 목표로 삼았으나, 뮌처가 일부 병력을 이끌고 프랑켄하우젠으로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행군 경로를 바꾸어 란츠크네히트 부대를 프랑켄하우젠 쪽으로 향하게 했다.2
초기 소규모 충돌
제후들은 란츠크네히트 용병을 모집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봉기군보다 나은 장비를 갖추고 있었지만, 사기와 규율은 항상 군자금의 규모에 좌우되었다. 농민들은 무장이 빈약하여 농기구를 개조한 무기, 창, 흉갑, 그리고 지역 민병대(란트베어)에서 복무한 덕분에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던 화승총 등이 뒤섞여 있었다.3 실제로 5월 14일 농민군은 정찰대와 그 증원 병력을 성공적으로 격퇴했지만, 제후군의 "포를롱 호프"를 추격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도시 외곽의 진지에 머물렀다. 헤센군과 브라운슈바이크군의 주력 부대는 야간 행군 후 아직 도착하는 중이었고 휴식이 필요했다. 그날 늦게 반란군은 도시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의 마차 요새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4 누가 협상을 위한 휴전을 제안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휴전으로 제후들은 동쪽에서 접근하던 작센공 게오르크의 군대와 합류할 시간을 얻었고, 도시를 포위하는 대신 마차 요새를 포위할 수 있었다.
전투
휴전은 정오 무렵 뮌처가 제후들에게 넘겨지지 않을 것이 분명해지면서 깨졌다. 포격으로 시작하여 기병과 보병의 파상 공격이 이어졌고, 제후군은 농민들의 허를 찔렀다. 농민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 도시 안으로 도주했으며, 용병들이 뒤쫓으며 계속 공격했다. 봉기군 대부분은 학살이라 할 만한 상황에서 살해되었다. 사상자 수치는 신뢰하기 어렵지만, 농민 측 손실은 7,000명 이상으로 추정되며, 란츠크네히트 측 사상자는 6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5 뮌처 자신은 도시에서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고, 1525년 5월 27일 뮐하우젠에서 처형되었다.
유산
프랑켄하우젠에서는 이 전투가 그 시대의 다른 많은 장면들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인 베르너 튀프케의 《독일의 초기 부르주아 혁명》(Frühbürgerliche Revolution in Deutschland)에 묘사되어 있다. 이 그림은 길이 400피트(120m), 높이 45피트(14m)에 이르며 전용으로 지어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6 이 그림은 뮌처를 혁명가이자 자신들의 선구자로 여겼던 사회주의 성향의 동독 지도부가 주문했으며, 작업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계속되었다.6 그러나 튀프케는 국가의 요구와 달리 전투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프랑켄하우젠의 사건을 당시 종교개혁기 독일에 만연했던 훨씬 더 넓은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맥락 속에 배치했다.
추가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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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Falckenheiner (1887). Philipp der Grossmütige im Bauernkriege. Mit urkundlichen Beilagen. Marburg.
- L.Fischer (1975). Die Schlacht unter dem Regenbogen. Berlin.
- S.Hoyer (1975). Das Militärwesen im deutschen Bauernkrieg 1524–1526.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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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uglas Miller (2017). Frankenhausen 1525. Seaton Burn, Newcastle. ISBN 978-0-995557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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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Wünsch (2003). Thomas Müntzer mit dem schwerthe Gydeonis – Letzte Tage des Kampfes, Studienarbeit Eberhard-Karls-Universität Tübingen, Fakultät für Philosophie und Geschichte. Tübingen.
51°21′58″N 11°6′10″E / 51.36611°N 11.10278°E / 51.36611; 11.10278
주석